동역자로 존중하라 (고린도전서 3:1-9)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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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로 존중하라 (고린도전서 3:1-9)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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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로 존중하라 (고린도전서 3:1-9)


어제는 작은교회 이야기 7번째 교회 글을 썼다. 금요일까지 완성하려 했지만 부족한 필력과 바쁜 일정으로 오늘 새벽에야 겨우 마쳤다. 오늘은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의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될 앱 개발모임이 있고, 저녁에는 개척학교 4주차가 진행된다. 대표되신 주님의 인도하심과 창조력의 기름부음이 꼭 필요한 날이다. 주님 인도하여 주소서.


바쁘게 움직여야 할 오늘 주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을 향해 육신에 속한 자, 즉 어린아이 신앙이라고 말한다. 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메시지 성경은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친구 여러분, 지금 나는 여러분이 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처럼 사람과 하나님께 행하는 것에 몹시 실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젖 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굴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이 젖을 달라고 우는 아이와 같다고 하면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으니>라고 번역하여 이들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수준은 성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수준에 있었다는 말이다. 주인 되신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그 육신에 속한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3절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여기 <육신에 속한 자>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육신적인 특성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갓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적당할 수 있으나 신앙이 오래된 사람에게는 이 표현은 매우 민망한 표현인 것으로 고린도 안에 일어난 시기와 분쟁이 바로 이런 원인이라고 말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분쟁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바울은 이렇게 교회가 나누어진 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신앙의 모습이며,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과 아불로를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5절 (메시지 성경) ‘여러분은 도대체 바울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아볼로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종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을 섬겨 우리 주인이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맡기는 법을 배우게 한 종일 뿐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아침 큰 울림을 준다. <나는 종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비교당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높아진 것에 우쭐해지고 자신이 낮아진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쭐하지도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으며 자신과 아볼로 모두 종일 뿐임을 말하며 그들의 신앙의 연약함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모습이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 나도 이런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고 싶다. 주님~


그는 아볼로와 비교논쟁에 빠지지 않으며 아볼로를 멋지게 인정한다.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린도 교회를 1년 6개월 만에 개척한 자기의 자랑은 어디에도 없고, 자기 권리를 주장함도 없고 비교의 대상이 된 아볼로를 이렇게 멋지게 인정하며 함께 주님의 종으로써 자기의 자리를 잡은 바울의 고백이 오늘 내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준다.


나도 이제 이곳을 내려가고 새로운 사람을 세울 것이다. 그때 이런 논쟁이 벌어질 때 아니 반드시 어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이런 논쟁이 필시 일어날 것인데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하다. 소망하기는 바울처럼 멋진 대답을 하는 진정한 스승의 자리를 갖추고 싶다. 주님~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마무리 한다.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며 자신들 즉 바울과 아볼로는 그 밭에서 일하는 일꾼으로 동역자라고 말한다. 분열의 자리에 이렇게 멋지게 후임을 축복하며 함께 그 자리에 서는 이 모습이 바로 주님의 마음, 영에 속한 자의 모습이 아닌가?


오늘 본문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나타난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의 모습을 비교해 준다.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 맘에 들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며 나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서 그 다름이 멋진 조화로움의 동역자임을 알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것이다.


오늘 파트 프라임과 앱 개발모임을 가진다. 그리고 개척학교를 진행한다. 이런 것이 자칫 누가 잘하는가? 하는 비교논쟁의 자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육에 속한 자에게 사단은 고린도교회처럼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변질시킬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영에 속한 자로 이 자리를 동역의 자리로 서로의 다름을 소중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며 천국을 이루는 자리가 되게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오늘도 여전히 내게 육신에 속한 자로 살기를 원하는 육체의 소욕이 존재한다. 이것이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했고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좇으라고 하셨다.


이 하루 나를 드러내고 주장하려는 육체의 소욕을 부인하고 겸손히 주님의 마음으로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 길을 걸어가는 천국이 세워지는 날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이 하루도 이 종을 붙드사 당신의 종으로 온전히 쓰임받게 하소서. 어린아이처럼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았다고 분쟁을 만드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주어진 삶과 사람들을 소중한 동역자로 함께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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