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감찰함 (이사야 18:4-7) - 박정제 목사
조용히 감찰함 (이사야 18:4-7)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이 찬양이 좋아서 참 많이 부른 찬양이다. 오늘 아침 이 찬양의 가사가 내 영혼에 이슬처럼 내리며 들려진다. 주일을 준비하는 날, 선교회의 내일을 깊이 고민하는 날 이 찬양이 큰 은혜가 된다.
<참 능력의 주시로다 ... 주 손으로 덮으시네>
12년째 라마나욧을 섬기며 요즘처럼 선교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때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단체로 서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가 될까?
처음 사례비없이 선교단체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나 50만원을 받았고, 그 이후에 한 후원자가 사례비 명목으로 지금까지 매달 230-200만원을 후원해 주셔서 그때부터 140만원의 사례비를 받고 있다.
후원 명목을 다 사례로 받지 못한 이유가 있다. 직원들의 사례가 열정페이를 드리고 있어 최소한 최저임금은 맞춰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일이 있었다. 작년 대학을 졸업한 친구 연봉이 2,400만원을 받는데 우리 선교팀원들은 그보다 못한 사례를 받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그 장면을 보고 하나님앞에 정말 해서는 안 되는 투정을 부렸다. 이게 뭐냐고 ~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역을 20여년을 하신 분들에게 대학 초년생보다 못한 사례를 해야 하느냐고 ~ 이러면 누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이제 자녀들도 성장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데 ~
그러던 차에 묵상하는데 이 부분을 놓고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 후원자 한 분이 네 입을 넓게 열어 기도하라는 뜬금없는 톡을 주셨고, 동일한 말씀을 다른 한 분이 하셔서 그날 하루 세 번의 연속된 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싸인이라 믿고 씨드머니 30억을 구하기 시작했다. 선교팀원들의 최소한의 생활안정을 이루게 하고, 선교단체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선교를 바르게 지속적으로 할 구조를 세우고 은퇴하자는 생각이다.
나 홀로 희생하고 달려갈 때는 어느 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제 사람을 세워가야 할 때가 되니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맡기려면 최소생활은 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르셨으니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는 역할이라 믿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 다음 사람은 그래서는 선교단체가 바로 설 수 없다. 주님, 아시지요. 주 손으로 덮어주소서.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피곤치 않게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일을 준비하는 날 이상한 투정이 나온다. 어제 누가 물어서 나에게 부대표는 자식과 같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말만 부대표이지 아무런 사례를 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차를 타고 오는데 차비한 번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선교단체로서 정체성을 지켜야 하기에 요구하는 것은 많고, 밥도 한 번 사주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한 주간 바쁘게 지나와 주일 설교 준비도 되지 못한 오늘 이상하다.
이런 날 주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본문에는 구스를 향해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마치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은 말씀이라 섬뜩하다. 이것을 메시지 성경으로 다시금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여기 나 있는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다. 따뜻한 햇살처럼 고요히’
표준새번역 성경의 번역으로 보자.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내려다 보겠다. 추수철 더운 밤에 이슬이 조용히 내려앉듯이, 한여름 폭염 속에서 뙤약볕이 조용히 내리쬐듯이’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겠다.> 무슨 말인가? 지금 구스가 여기저기 빠른 배와 민첩한 사신들을 동원해 연합군을 형성하기 위해 서둘고 있는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조용히 내려다보겠다고 ... 말하자면 앗수르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때리고 있고 주변 나라를 힘겹게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조용히 내려다보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그 모습을 두 가지로 비유하신다. 더운 밤 이슬이 조용히 내려앉듯이, 폭염에 뙤약볕이 조용히 내리쬐듯이 주님은 조용히 지켜보시고 계신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5절에 그러나 추수하기 전,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낫으로 베며 찍어 버리며 독수리와 짐승들에게 던져 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7절 ‘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산에 이르리라.’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벌어지면 구스가 시온산에 예물을 드리며 예배할 것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4절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조용히 감찰함이>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다.>, <조용히 내려다보겠다.>
나는 매우 성격이 급하다. 이런 나에게 이런 하나님의 침묵은 정말 하나님의 외면처럼 느껴지고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나 이런 하나님의 침묵은 때로 고난받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느껴진다. 더 나아가 악을 행하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부재(죽음)의 증표로 오해되기도 한다.
12년을 달려왔는데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조용히 감찰하시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며 시온산에서 예물을 드리며 예배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조용히 감찰하신다.>는 말씀이 오늘은 아멘으로 받아지기 보다는 좀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일하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외쳐지는 날이다. 주님 ~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고 찬양한다.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임을 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이 정답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답답하다. 나란 조급한 인간은 조용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기다리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하며 조용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에 찬양하며 오늘도 기쁨으로 나의 길을 걸어가련다. 지난 12년처럼 ...
주님, 오늘도 인간의 조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지 않게 붙잡아 주소서. 오늘도 하나님이 조용히 지켜보고 계심을 믿고 찬양하며 답답한 이 길을 기쁨으로 찬송하며 걷게 하시고 광야에서 주님이 가르치시기 원하시는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설 수 있는 종으로, 라마나욧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