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크심을 묵상합니다 (이사야 29:15-16)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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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크심을 묵상합니다 (이사야 29:15-16)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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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크심을 묵상합니다 (이사야 29:15-16)


  어제는 목회사관학교 7주차 수업을 마쳤다.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강사님과 헌신하는 사관생도들 그리고 이 사역을 후원하시는 우리 주님과 후원자들의 멋진 조화속에 참으로 보람된 사역을 마쳤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이 일을 통해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며 다음세대 하늘 부흥을 이룰 진짜목사가 세워져 가게 하소서. 


  오늘은 금요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시간이다. 주님, 당신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얄팍한 강의와 설교가 결코 인생을 구원하지 못함을 잘 압니다. 오셔서 한 분 한 분 어루만지시고 주님의 만져주심으로 사역자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저들이 새로움으로 달려가게 하소서. 


  오늘은 고난주간 중 성 금요일이라 표현되는 날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수난을 당하신 날이다. 새벽에 붙잡히셨다. 그리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매달리셨다.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 없는 자로 아버지와 분리되셔서 죽임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한다. 누군가로부터 억울하게 지목되어 십자가를 지면서 나는 아니라고 외쳐야 할 순간, 억울한 누명부터 시작해, 잘못된 재판과 모욕과 수치뿐인 모든 과정에 대해 이것은 아니라고 외쳐야 하건만, 주님은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려 첫 번째 외친 소리가 이것이었다. 눅23:34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어찌 이러실 수 있는지 ~ 나 같으면 이것은 아니지, 이건 아니야~ 이럴 수 없어~ 라고 외쳤을 것인데 오히려 이렇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다니 ~ 주님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오늘 우리에게는 <그 피로 내 죄 씻었네>란 염치없는 찬양의 가사가 되었으니 참으로 얼굴을 들 수 없다. 주님 ~ 주님 ~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화 있을진저>가 나오는 또 다른 이유가 선포되고 있다. 15-16절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햐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현대인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한다. 

  ‘자기 계획을 여호와께 숨기려 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몰래 자기 일을 하며 너희 하는 짓을 보거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너희는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되었다. 토기장이를 진흙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 어떤 물건이 그것을 만든 사람을 보고 `너는 나를 만들지 않았다.' 할 수 있느냐? 기계가 그것을 발명한 사람에게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화 있을진저> 책망을 듣는 이유는 이들이 자기들의 계획을 하나님께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숨기려 한 계획은 바로 애굽과 동맹을 체결하려는 것이다. 이 일에 이사야 선지자는 20장에서 경고했었다. 그러자 이들은 비밀리에 이 일을 진행하며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죄인의 특징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숨으면 하나님이 모르실 것처럼 어리석었던 것처럼 죄와 사단은 몰래 하면 괜찮다고 우리를 부추기는 것이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도록 ~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애굽을 의지하려는 계획을 숨긴 것인가?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음을 자백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작게 여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모욕을 당하신 것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된다. 


  인류 역사는 바로 이것의 반복이 아닐까?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 몰래 하면 하나님이 모르실 거라는 착각한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처절하게 모욕하는 일을 한다. 혼자 있으니 하나님도 모르실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산 세월이 얼마나 되는지 내 모습을 깊이 돌아본다. 주님 ~


  십자가에 매달려 첫 기도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 외치신 주님의 기도가 들려진다. 양심이 모르지 않지만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없는 것처럼 속이는 사단의 소리앞에 그렇게 무너졌던 순간순간들을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려 첫 소리로 외친 그 소리앞에 자백한다. 주님 ~


  주님, 이 종이 이제는 나의 계획을 여호와께 숨기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알고 겸손히 나의 모든 것을 낱낱이 주님께 아뢰며 주님을 따르는 종이 되겠습니다. 라마나욧 선교회 설립 기념일에 자주 불렀던 찬양이 생각난다.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길 그 좁은 길로 가길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길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길 원하네‘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아 겸손히 나의 계획을 내려놓고 진정한 주님의 소망을 품고 그 깊은 길로 가는 자가 되기를 다짐한다. 주님~>


  주님, 나같은 자를 위해 그 불법한 재판과 모욕스런 십자가를 묵묵히 지시고 오히려 나같은 자를 위해 기도해 주사 구원하심을 진정 눈물로 감사드립니다. 나의 나됨이 그저 당신의 은혜임을 알고 당신의 크심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아 나의 작음을 내려놓고 당신의 그 길 좁은 길로, 깊은 길로, 높은 길로 믿음으로 가는 종이 되겠습니다. 삶의 한절이라도 아니 단 1초라도 당신을 닮기 원합니다. 


글,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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