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6-8 [복음(福音) : 그 날을 향한 시선]-2
[디모데후서 4:6-8]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복음(福音) : 그 날을 향한 시선]-2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에서 한 아기가 태어난 사건,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었습니다.
나름 인류사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하는 B.C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침공 사건이나, A.D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침략한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이 거룩한 사건에 감히 비할 바 되지 못 합니다.
요 3:16절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구속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으시기 위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구원의 경륜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경륜 안에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전 이미 모든 사람들은 뼛속까지 죄로 찌들어 있었고, 죄의 악취를 풍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살기 돋는 독사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자신의 죗 값을 치르기 위한 대속 제물을 흠 없는 짐승 가운데서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죗 값을 치를 수 있는 흠 없는 대속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그 누구도 생각해 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 분, 오직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땅에서 모든 일을 이루신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함께 하고 계시는 성령님도 내주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제자리 믿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영광 그 자체인 그 날'을 향한 믿음의 경주를 다해야 합니다. 그 경주는 ‘그 날’의 거룩하고 영광된 시작을 향해 달려 나가는, '자원하는 열심' 입니다.
인류는 그 역사의 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한없는 영광으로 가득한 영원한 기쁨의 세상이거나. 끝없는 형벌로 가득한 영원한 고통의 세상입니다.
인생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는 전자와 후자의 그림자가 담겨 있습니다. 육으로 지내는 단 한번 뿐인 인생의 시간은 결코 붙잡을 수 없으며 붙잡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의 목적지는 ‘그 날’이라는 이름을 가진 종말의 어느날 입니다. 제 안에도 여러분 안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맞이하게 될 영원한 실제의 예표입니다.
성경의 신약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을 확증하면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을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왜 다시 오신다고 하신 것일까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메시지를 믿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바로 ‘구속 사역의 완성’ 때문입니다.
구속 사역이 십자가에서 완성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것이 아니라 구속의 길이 십자가에서 열린 것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사건 이후로 복음전파의 구속 사역은 계속 이어져왔고 성취되어져 왔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이 되면 구속 사역의 완성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날'이 이르기까지 '세상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자초한 이 비극'은 계속 될 것입니다. 피조 세계의 시간을 비롯하여 그 외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 한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계속 될 것입니다. 피조세상을 다 이해하지 못 하는 인간들의 한계 때문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이 무엇이냐고, 삶이 무엇이냐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것도 없습니다. 그들 역시도 인생의 결론을 맛보지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이 길이시고, 주님이 삶의 주관자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그 분만이 정답이십니다.
완벽하게 만드신 이 세상을 하나님은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유기 되고 있는 상태라면 이 땅에서의 복음은 사라졌을 것이고, 교회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패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지금도 세상 끝을 향해 전파되고 있고, 선교의 문은 계속 열려지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 곳이 곧 교회가 됩니다. 그 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지금도 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시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점점 더 완악해지고 패역해지고 썩어져 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인간들의 탐욕과 정욕과 불신이 만들어낸 타락의 결과물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이런 타락된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인간들이 자초한 타락의 결과물이라는 쓰레기로 덮여가고 있을 뿐입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점을 아주 완벽하게 설명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 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19-22).
서로 물고 뜯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피조 세계 전체에 들려오는 고통하는 신음소리는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사단의 궁극적인 승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발악일 뿐입니다. 복음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도 승리 없는 사단에 속해 있습니다. 그 사람안에 있는 어둠의 그림자가 그의 죽음 이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깨닫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 모든 것이 깨달아집니다. <계속>
MARANATHA !
????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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