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모양대로 (창세기 5:1-20)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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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모양대로 (창세기 5:1-20)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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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모양대로 (창세기 5:1-20)


긴 시간을 라마나욧 <스페이스 R> 공사를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하나는 젊은 세대가 모일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과 두 번째는 천국 공사장으로 마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제를 가지고 다양한 어려움에도 잘 달려왔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개강이 2주나 지났음에도 마치지 못해 후원하신 분들에게 미안하고 강사님들과 사관생도들 그리고 젊은 세대 사역자들에게 죄송하다. 주님은 내 부족함 아시고 이 과정을 보셨기에 부끄럽지만 죄송함보다는 그저 감사함을 드릴 뿐이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어 다음주 화요일까지 모든 공정을 마치고 나도 새로운 사역에 헌신하려고 한다. 아직도 남겨진 숙제들이 많지만 최대한 일단락을 짓고 한숨을 돌린 후에 새로움의 자리로 나아가련다. 주님, 시작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마무리에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어제는 목회사관학교 2주차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관생도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진짜목사가 되려고 헌신하는 모습이 감동이다. 어제도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방문하였다. 여러분들이 <스페이스 R> 공간을 보고 방문이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세워졌기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주님, 뜻대로 이곳이 사용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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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아담이 그의 새로운 후손 셋을 통해 계보를 이어가는 장면의 시작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셋을 낳았다는 표현이 나오며 매우 주목된다. 1-3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지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되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여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기의 모양대로 지으셨다. 그런데 아담도 셋을 낳으며 자기의 모양 즉 자기의 형상대로 낳았다고 한다.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가 데무트(דְּמוּת)란 단어로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이지만 이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음을 묵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기의 모양대로 창조하셨을 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아담이 셋을 낳을 때의 모양은 죄로 더럽혀진 그래서 죽음을 숙명으로 담보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담의 계보는 죽음으로 끝나는 숙명을 기가 막히게 보여주고 있다. <낳았고 ...죽었더라> 18-20절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분명 같은 단어 <자기의 모양> 즉 데무트(דְּמוּת)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정반대의 모양이 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지만, 아담은 죽음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주님의 은혜가 없는 인간 실존의 자리가 많이 낳을 수 있지만 결국은 죽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인생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다시 실감하며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본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것이 아담의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의 실존적 길임을 가슴에 다시 새긴다. 나도 분명 죽는 존재다. 그리고 그 죽음의 날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 후에 맞이할 심판이 있음을 안다면 오늘이란 시간이 심판의 자리로 가는 최후의 길목이라 생각하며 죄악을 씻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에 헌신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인생이 아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죄악을 씻고 오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님~


그런데 인간은 낳고 낳고를 하면서 죽음을 잊고 마치 죽음에서 자신은 예외인 것처럼 살곤 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에도 이 죽음의 강을 건너는 이유는 바로 인생의 삶이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갈 계보를 만들어 내는 사명의 자리, 기회의 자리라는 사실을 알게하신다.


왜 하나님은 인생 후반전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게 하시는가? 죽음을 아는 자로 이제는 내려감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며 생명의 계보를 이어가도록 소망하시는 것 같다.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보여주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인생은 올라감만 있지 않고 내려감이 있다. 죽음의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때를 인식하고 삶이 심판대 앞에서 허무하지 않고 생명의 계보를 만들어가는 삶이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아멘.


오늘이란 시간을 또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늘 올라가는 길만 보인다.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내려가는 삶인지 나도 이제 초행길이라 참 어렵다.


오늘 주님은 초행길을 걷는 내게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이란 자리가 생명의 계보를 잇는 사명의 자리임을 기억하며 죽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생명을 전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담이 전해준 모양대로 살면 나의 삶은 뻔해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할 때 내 삶에는 하나님의 모양대로 생명이 흘러갈 것이다. 오늘도 이 아침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꼭 붙잡는다. 그분의 말씀으로 나를 경영하며 오늘도 생명의 계보가 이어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이 걸으신 자기를 부인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가신 그 삶을 나도 본받으며 내게 주어진 사명의 삶을 주님을 따라 가련다. 주님 이 종을 붙들어 주소서. 심판대앞에서 허무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서는 자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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