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통곡으로 (이사야 16:6-14)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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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통곡으로 (이사야 16:6-14)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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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통곡으로 (이사야 16:6-14)


‘... 예수님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금요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시대적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금요세미나의 본질은 온라인으로 될 수 없어 고민이다. 주님~


우리는 구제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건강한 목회를 향한 신문지 한 장이며, 진짜 목사를 세우는 기관이다. 현실과 타협하고, 몰라서 맘대로 하지 않도록 작은교회 사역자들의 비빌언덕과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치는 바로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에게 있다. 주님, 부르신 소명대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구원의 손길을 외면하고 멸망을 자초한 모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6절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어가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6절에만 <교만>이 3번 <거만>이 1번 나온다. 모압의 멸망 원인은 바로 ‘교만’이었다. 교만의 위험성에 대해 성경은 많이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치셨던 구절이 생각난다. 잠16: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왜 이렇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가 될까? 그 이유는 교만은 항상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자리에 자신이 앉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 아닌 의지할 것이 있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한 교만한 모압의 결론은 무엇인가? 7-8절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여기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은 모압이 통곡할 때 울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표현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교만하다 망하니 아무도 함께 울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교만하게 된 원인이 나온다. ‘길하레셋’은 모압의 대표 과일인 건포도 산지다. 또 ‘헤스본’과 ‘십마’도 포도 산지로 유명하였다. 모압의 길하레셋, 헤스본, 십마는 포도와 건포도 산지로 자랑하는 도시였다. 이들은 이것을 통해 벌어들이는 경제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외면했다. 그리고 이제 그 가지가 꺾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꺾어벌리자 이들의 통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선지자는 자신이 울어주리라고 한다. 9-11절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과거 추수 때가 되면 소출의 풍성함으로 인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는데, 이제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포도주 틀에서 포도를 밟을 사람조차 없다고 탄식한다. 그래서 선지자는 대신 울어주겠다고 한다.


선지자는 이때의 슬픔을 애도하며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한다.


여기 모압과 길하레셋을 생각하니 창자가 수금같이 소리를 낸다는 것은, 꼬였던 창자가 풀리면서 뱃속에서 악기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모압을 위하여 느끼는 슬픔과 고통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함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의 아픔의 정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이것이다. 12절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


모압의 신은 ‘그모스’다. 이런 상황에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 산당에 가서 지극정성을 드리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이 슬픔을 걷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했지만 교만함으로 믿지 못하여 이런 비참한 슬픔에 빠져 그모스에게 온갖 정성으로 빌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면서 선지자는 이런 결론으로 말씀을 마감하고 있다. 13-14절 ‘이는 여호와께서 오래전부터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거니와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것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여기 중요한 표현은 <오래전부터>이다. 하나님은 모압을 향하여 한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말씀하셨다. 또 당장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3년의 기한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오래전부터 구원의 길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 길하레셋의 건포도 생산으로 대변되는 자신들의 경제력, 자신들의 능력을 믿었고, 그들의 우상 그모스를 믿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교만이라 하며 이 교만으로 통곡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교만은 통곡을 낳고, 교만이 낳은 통곡은 아무도 함께 울어주지 않는 외로운 슬픔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품꾼의 정한 해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되면 교만한 자는 그렇게 물리침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주, 길하레셋의 건포도가 내게는 무엇일까? 겸손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혹시 지금 내 자리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무엇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겸손히 주님의 음성 앞에 선다. 주님~


주님 이 종의 교만을 꺾어주사 주님께 버려지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내 삶에 하나님 아닌 의지할 것들을 내려놓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는 겸손한 종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구원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나의 유일한 길과 소망과 힘은 주님밖에 없음을 자백합니다.


글,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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