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믿음의 도전]-3 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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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믿음의 도전]-3 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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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복음(福音) : 위대한 믿음의 도전]-3


  성경은 한 인물을 통해 삶과 생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앞서 살펴 본대로 성경은 삶과 생명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대신, 모든 만물의 배후에 있는 무언가로 되돌아가게 만들고, 역사를 여시는 열쇠가 되시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해 할 수도 없고, 또 살 수도 없다고 가르치는 것을 대 전제로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이 세상에 어떤 조치를 취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인류 문명의 죄 가운데 던져진 채 방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류가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역사의 생성과 인류 문명의 기록이 하나님 뜻을 따라 완성되어져 가는 구속사의 일면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시작된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을 갖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절대자의 능력이 상실되었음을 주장하는 '케노시스' 이론은 그래서 무색함 그 자체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구원자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고, 메시아이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오셨다면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그 분의 주된 사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님은 구원의 은혜를 갖고 복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통해 천국의 실체를 가르쳐 주셨고, 그 곳을 향한 소망을 부어주셨습니다.


  산상수훈대로 살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지키면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행동의 죄가 아닌 생각의 죄도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지만 죄를 가르치시는 것이 주님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직접 믿음의 본을 보이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제자들로 하여금 뜨거운 믿음의 도전을 갖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4:28-29절에 등장하고 있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이 말씀을 볼 때, 대부분은 베드로가 믿음이 없어 물에 빠진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다른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도전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물 위를 걷는 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그 도전은 믿음으로 사람의 상식을 깨버리는 데서 시작하게 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여러분이 베드로의  상황 속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 위를 걸어가겠습니까? 아뇨 여러분은 못 갑니다. 만일 간다고 해도 내가 갔다고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물 위를 걷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으며, 물리적인 밀도 차이만 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과감하게 발을 내딛어 도전하였습니다. 비록 바람을 보고 바다에 다시 빠지기는 했지만, 그는 바다 위를 걷는데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둠 속 풍랑이 거세게 일던 수면 위에는 다른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베드로처럼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그들은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크고 놀랍고 비밀한 것을 응답으로 받는 그런 기적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면 삶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도전을 이룬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이유는 믿음으로 도전 할 수 있는 용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이룬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바울 자신은 안주하지 않았고,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믿음의 도전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왜 도전해야 할까요? 도전해야만 목표를 이루게 됩니다. 도전해야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도전해야만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전합니다. 이렇게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을 계속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도전은 바로 '영적 도전' 입니다. 믿음의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믿음의 성장을 위한 영적 도전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영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2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는 땅에서, 그것도 산에서 방주를 만든 것은 노아의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순종한 것과, 하나님께 아들 이삭을 바친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수백 만 명 이상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온 것은 모세의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묵언으로 그 견고한 성을 돈 것은 여호수아의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으면서 해왔던 믿음의 도전은 무엇이었습니까? '내 믿음의 도전은 이것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믿음의 도전을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믿음에는 ‘이 정도면 됐다’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믿음의 도전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도전을 이루어 나아감으로, '아름다운 열매맺는 좋은나무'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ANATHA 

현명인목사

아름다운열매맺는 좋은나무교회

아둘람복음공동체

Adullam Ministry & Church

www.adullam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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