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믿음이다. (마태복음 12:22-37)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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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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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믿음이다. (마태복음 12:22-37) - 박정제 목사

교회정보넷 0 1966

말이 믿음이다. (마태복음 12:22-37)


이제 라마나욧의 새로운 10년을 향한 출발을 했다. 물론 아직 공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공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사를 해서 정신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공간에 입주했다. 오늘은 찬송가의 가사처럼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온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돈이 주인되지 않고 주님이 주인되어 여기까지 왔다. 아울러 주님이 뜻하신 공간을 세울 수 있었고, 주님의 성품을 따라 이곳이 천국 공사장으로 달려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물론 여전히 다툼의 요소가 없지 않고, 엄청난 위험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우리는 끝까지 이런 천국 공사장을 만들어 갈 것이다. 끝까지 주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오늘도 기도한다.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어렵다. 주님, 도와주소서. 2% 부족한 세상에 2% 넘치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어제 티비가 설치되었다. 소중한 티비를 4대나 기증해 주신 분이 계신다. 강의실과 스페이스 R 무대에 설치되니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지 그저 감격할 뿐이다. 또한 한 분은 이사로 수고했다고 식사비를 후원하셨다. 늘 우리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주시는 후원자들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어 큰 격려가 된다. 주님, 이 소중한 당신의 마음에 감동한 이들을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축복하소서.


오늘은 사관학교 6기생 졸업사진 촬영과 8기생 면접이 있다. 아울러 공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동행을 해야 한다. 일정이 겹쳐서 서로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서로가 감사하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축복하소서. <꿈이 있으면 불만도 감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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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씀으로 졸업과 새로운 시작을 이루는 이날을 축복하실까?


본문에는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신 주님의 일하심에 대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비난함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오고 있다. 그 핵심의 말씀이 이것이다.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다시 말하면 주님이 하신 치료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비난하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30절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말씀은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신 사건으로 백성들이 다윗의 조손이 아니냐 하고 놀라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려 하는 순간 놀랐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건을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아주 강력하게 나가고 계신다. 앞에서 처음 마음을 지키기 위해 소리 지르지도 않고 감정을 상하게 하지도 않으시면서 그곳을 떠나셨던 주님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왜 그러셨을까?


이 부분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30절 ‘이것은 전쟁이며 중립지대는 없다. 내 편이 아니라면, 너희는 내 적이다. 돕지 않으면 방해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중간이 없음을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은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이다. <중간은 없다.>


그렇게 강력하게 선포하신 예수님은 신앙에서 말의 중요성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34-37절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말이 너희를 구원할 수도 있고, 너희를 저주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입장을 지키느라 때론 다양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알량한 자신을 지켜야 하기에 그렇게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말은 그 안에 가득한 것으로 쌓아진 악에서 나오든지 아니면 쌓은 선에서 나오든지 하는 것이며 때문에 그 말로 구원이 일어나기도 하고 저주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이런 무서운 말을 듣게 된 것은 자기를 지키려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무시하고 비난한 말에서 시작된다. <인생은 자기를 지키려는 순간 무너지고 남을 세우려는 순간 일어난다.>


오늘 내가 나를 세우려고 하지 말고 남을 세우려고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이다.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잠12:14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한다. <입을 잘 놀리면 좋은 것을 배불리 먹고 수고하면 그만큼 돌려받는다.>


사관학교 6기생을 졸업시키는 날, 그리고 8기생을 새롭게 면접하는 날 주님은 입을 잘 놀리라고 하신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실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입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공연히 비난꺼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로 그분을 향한 하나님의 소중한 마음을 전달하는 자리가 되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렇게 자리를 떠나면서도 처음의 자리,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던 주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는 자리에서는 아주 단호하게 나오는 모습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한다. 죄인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섬김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죄인을 구원하고 천국을 확장하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을 향한 단호함에는 조금의 물러섬이 없으신 주님을 배운다. 주님~


이 둘의 조화가 결국 신앙의 성숙을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 모습을 보면 이 둘이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날 때가 많다. 갈수록 고집은 세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내 생각을 주장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나이 들음의 자리가 바로 내 자리다. 내려와야 하는데 내려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말은 내려온다고 하며 행동은 더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주여~


주님, 이 하루 이 종이 주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입이 되게 하소서. 나를 지키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실로 상대를 살려내기 위한 말이 되게 하소서. 조금 방법과 기술이 서툴더라도 이런 주님의 마음만은 가지고 살게 하소서. 그렇게 조금씩 모든 것을 벗고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예비된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4. 이 소중한 사역을 위해 5배의 후원자들이 모여질 수 있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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