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담아주라 (창세기 37:1-11)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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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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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담아주라 (창세기 37:1-11)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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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담아주라 (창세기 37:1-11)


어제는 지난 7년 동안 고대시대 최고의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를 인터넷 공간에 만들어 <네오 알렉산드리아>라고 명명하며 귀한 사역을 해 오신 분을 만났다. 전 세계의 지식창고를 연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 오신 엄청난 사역에 그저 말문이 막히고 존경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돈이 되지 않기에 그가 걸은 걸음이 얼마나 힘겨웠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그 학생들이 졸업해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취업할 수 있도록 회사를 세워 그 친구들을 모아 회사를 운영하시는 매우 독특한 분이시다.


참으로 세상에는 하나님이 각 분야에 세우신 엄청난 분들이 많음을 고백한다. 이런 분들과 연결시켜 주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하고 이분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이런 분들이 연결되고 하나되어 하나님의 꿈을 다음 세대에 이루실 것을 믿는다. 그래서 함께할 것을 요청하고 나는 기도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분들이 연결되어 주님의 꿈을 이루게 하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날 어떤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이제 야곱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의 핵심은 요셉이 다른 형제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요셉의 꿈 이야기로 그 관계가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형들은 왜 요셉을 미워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먼저 나온다. 4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메시지 성경의 번역을 보면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표현이 매우 적당한 표현이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가 형제들간에 불화를 만든 첫 번째 원인이었다. 이때 요셉이 17세이고, 야곱의 나이 108세이며, 할아버지 이삭의 나이 168세다. 91세에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자녀이기에 야곱이 분별력을 잃고 사랑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생이 단면이 아니듯 이것만 존재한 것이 아니다. 2절 ‘...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결정적으로 형제들이 말조차 건네지 않는 그런 미움을 받은 것은 아버지의 편애 뿐 아니라 요셉이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였기 때문이다. 왜 요셉은 이런 일을 했을까?


청소년기를 지나며 형제들의 행동이 여러 가지로 허물이 있었을 것인데 요셉은 그런 잘못들을 아버지 야곱의 편애속에 자연스럽게 고자질을 하게 된 것이고 그로 인해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아마도 요셉에게 그런 잘못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것을 덮어줄 만큼 요셉의 마음이 크지 않아서 그야말로 미운 털이 박힌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묵상하게 된다.


요셉의 입장에서 이런 아픔들이 이해되기까지 너무도 긴 세월을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면서 이런 시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섭리를 믿음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삼게 한 은혜가 깊이 감사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요셉의 꿈이 이 관계에 불을 질렀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고 부모님과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조금의 주저함없이 드러내어 말함으로 이런 미움에 불을 질러버렸다. 철이 없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요셉의 가슴에 비전의 불을 지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네오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어 오신 분처럼 그 꿈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가슴안에서 불이 되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비전의 특징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비전은 지금 솔직히 누구에게도 현실적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헌신과 희생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 대해 본문은 이렇게 마감한다.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누군가의 비전이 자신에게 희생과 부담이 될 때 그것을 시기할 것인가 아니면 간직해 둘 것인가? 즉 지켜봐 주는 사랑을 담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오늘 본문은 나에게 들려준다.


미워하는 형들 입장에서 이것이 시기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편애가 불편하게 했고, 거기에 자신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는 것까지 도저히 이뻐할 수 없는 요셉, 거기에 자신들이 자기에게 절을 할 것이라 거침없이 말하는 요셉을 미움 가득한 눈으로 시기하는 것이 인간에게 매우 당연한 감정이다.


그러나 사랑을 담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이런 말이 분명 이해가 되지 않고 당돌하지만 가슴에 담고 지켜볼 이유가 된다는 사실이 오늘 아침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 내가 섬기는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에게는 사실 갖춰진 것이 없기에 요셉처럼 허무 맹랑한 비전들이 들려질 것이다. 그동안 이런 비전들을 들은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돌아보면 나도 그들의 오늘에 초점을 맞추고 시기의 이유로 받았던 순간들이 많았음을 자백한다.


진실로 사랑으로 그들의 오늘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조차도 야곱처럼 마음에 두고 지켜봐 주며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아멘. 아멘.


물론 야곱은 요셉의 이야기에만 반응을 했다. 그의 사랑의 크기가 작았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의 이런 말도 안 되는 몸짓을 그렇게 받아주시고 다음에 담아 두시는 분이심을 찬양한다. 오늘도 주님의 마음으로 편애를 버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의 꿈과 비전을 가슴에 담아주고 지켜봐 주며 지지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요셉의 형제들처럼 요셉의 허물들이 마구마구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그것을 넘어서 마음에 담아두고 지켜봐 주는 그 사랑이 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이 종에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사 이런 모습으로 섬기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비빌언덕과 플렛폼으로 쓰여질 30억 씨앗자금을 허락하소서.

2. 이곳에서 진짜 목사들이 세워져 다음세대를 일으키게 하소서.

3.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준비할 사람과 재정과 길을 열어주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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