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독립선언 (창세기 39:1-6) - 박정제 목사
신앙의 독립선언 (창세기 39:1-6)
어제 한 분이 우리가 추진하는 플렛폼 사역을 위해 귀한 후원을 해 주셨다. 환경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소중한 후원을 해주신 후원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런 소중한 후원을 통해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사역자들의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는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주님 이끌어 주소서.
오늘은 서울의 한 교회가 젊은 세대들을 향한 사역을 추진하며 라마나욧 <스페이스 R>사역을 보고 자문을 얻기 위해 방문한다고 한다. 우리의 발걸음이 다른 교회에게 길이 될 수 있어 감사하고 소중한 일에 참여한다고 하니 행복하다. 주님, 이런 소문이 더 나서 더 많은 교회가 함께하게 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 놀라운 간증을 담고 있다. 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형통한 자가 되어> 이 말은 ‘번영의 사람’이란 의미이다. 분명 노예로 팔렸기에 그에게 붙여야 할 이름은 <슬픔의 사람>이어야 하건만 <형통한 자>라는 놀라운 이름을 얻었다. 이것이 어떤 이유인지 다음절은 이렇게 설명한다. 3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그의 주인이 된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두 가지를 보았다고 한다. 하나는 요셉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았고 그가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임을 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디발은 요셉에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을까? 그것은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삶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자신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경주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일 것이다.
그야말로 다른 노예와 일하는 수준에 차이가 있었다. 바로 거룩한 삶이다. 노예들의 특징인 주인의 시키는 일만 겨우 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정 주인을 복되게 하려는 마음으로 섬기는 구별된 삶이 요셉에게 보인 것이다.
이런 결과로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모든 것을 맡긴다. 4절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앞에 나오는 <은혜를 입어 섬기매>를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번역한다. <요셉은 주인의 눈에 들어 가까이서 그를 섬기게 됐습니다.>
그렇다. 거룩한 삶이란 누구에게나 통하는 마음이다. 성경이 말하는 삶은 어디서나 우리로 마음에 들게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요셉의 입장을 묵상해 본다. 그는 갑자기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 노예로 팔려 왔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삶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17세의 나이에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들었을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등장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노예로 팔려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결코 그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로 살 때 요셉은 하나님을 야곱을 통해 경험했다고 하면 이 순간 요셉은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신앙의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문득 내 신앙의 울타리였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소천하시고 나서 그제야 신앙의 독립을 선언하며 하나님을 경험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요셉의 고난을 요셉의 신앙 독립선언으로 선용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일반적으로 요셉의 상황은 하나님이 안계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린데 오히려 이 자리가 요셉이 단독자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해 본다. 사실 야곱이 벧엘에서 홀로 섰을 때 신앙의 독립선언이 있었듯 신앙은 이런 홀로 선 자리에서 독립선언이 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신앙의 독립선언을 하는 자리로 가느냐? 아니면 슬픔과 원망과 상처를 품고 절망의 땅으로 가느냐는 요셉의 선택이다. 하나님은 분명 그 자리에 요셉과 함께하시고 계신다. 이 사실을 오늘 아침 나의 중요한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겨본다. 삶이란 변수를 만드는 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신앙의 독립선언을 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상처에 아파하며 슬픔에 눌려 살 것인가는 본인의 믿음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요셉은 이 두 가지 선택의 순간 신앙의 독립선언을 했다. 그는 슬픔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신뢰하고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노예의 삶을 감당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할렐루야
요셉이 수시로 찾아오는 형제 배신의 아픔과 노예로 사는 삶의 고통과 설움을 신앙의 독립선언으로 바꾸어 내며 힘겨웠을 그 시간을 묵상해 본다.
그런데 돌아보면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리고 기도실에서 울면서 기도하며 밤을 새우며 주님의 은혜로 독립선언을 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그 순간 함께하시며 그 모든 슬픔을 외로움을 잊게 하셨고 은혜에 빠지게 하셨다. 요셉의 삶에도 아마 그가 하나님을 부를 때 이런 은혜가 요셉을 붙들었기에 이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까?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환경이든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시며, 고난이 우리 신앙의 독립선언의 자리라는 사실을 기억케 하신다. 오늘 코로나로 인해 라마나욧의 오프라인 사역은 멈춰 서 있다. 그동안 매주 100여명의 사역자를 섬길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을 빼앗긴 시간 이 고난을 새로운 신앙독립을 위한 자리로 선용하시는 주님을 보라고 하신다. 아멘.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사역만 하던 우리로 온라인 사역에 새로운 독립을 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지금의 상황을 견디며 앞으로 나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더욱 더 충성스럽게 나아가 하나님이 하신 증거가 드러나는 삶이 되기를 결단한다.
주님, 라마나욧 사역의 정체기를 독립선언의 자리로 삼고 온라인 사역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시간으로 선용되게 함께하심을 찬양합니다.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며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서고 발견되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비빌언덕과 플렛폼으로 쓰여질 30억 씨앗자금을 허락하소서.
2. 이곳에서 진짜 목사들이 세워져 다음세대를 일으키게 하소서.
3.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준비할 사람과 재정과 길을 열어주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