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같이 돌보는 공동체 (고린도전서 12:14-31) - 박정제 목사
서로 같이 돌보는 공동체 (고린도전서 12:14-31)
이제 2021년의 마지막 주간을 시작한다. 변화라는 단어를 가슴에 안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나 변화는 만만하지 않았고 나는 많이 지쳤다. 감사한 것은 그럼에도 주님은 지치지 않고 이 변화를 이끄실 뿐 아니라 나를 보듬고 계신다. 언제나 그랬지만 나는 수없이 넘어지고, 흔들렸지만 주님은 늘 신실하셨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붙드시고 인도해 주셨다. 이것이 2021년을 마감하는 한 주간을 시작하는 나의 고백이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두 번의 만남이 있다. 그리고 작은교회 이야기 11번째 글을 써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때이다. 주님, 오늘도 인도해 주시고 오직 주님만 영광을 받으소서.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사람의 몸을 비유로 해서 한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메시지 성경은 이것을 부연 설명을 하여 번역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참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그 몸의 지체로 인정할 때에야 비로서 여러분이 지체인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을 그 몸의 지체로 인정할 때에야 비로서 여러분이 지체인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의 핵심은 그 몸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함께 돌봄에 참여하는 것이어야 지체로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바울은 앞에서 몸을 비유로 이렇게 말했었다. 21절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교회는 지체들간에 서로 비교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과 격려와 기다림의 주인공임을 다시금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메시지 성경은 매우 의미있는 번역을 하고 있다. 28-29절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가 온전한 하나의 몸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한 지체만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만 있는 교회, 예언자만 있는 교회, 기적을 행하는 사람만 있는 교회, 병고치는 사람만 있는 교회,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만 있는 교회,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만 있는 교회, 그런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이 매우 울림을 가지고 들려진다. <한 지체만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교회의 안타까움은 성도들이 자신이 지체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한 지체가 비정상적으로 커져 공동체성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목사의 은사는 매우 크게 드러나고 있는데 성도들 각자의 소중한 은사들이 조화를 이루고 섬김과 격려와 용서속에 자라지 못하는 안타까운 기형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공동체가 바르지 못하다고 지체들이 공동체를 외면하는 2차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오늘의 교회 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돌아보게 된다.
2022년 ‘예수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자.란 표어를 주셨다. 라마나욧안에 그리고 내 안에 비정상적으로 커진 부분으로 인해 공동체성이 파괴된 현장을 복구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아니 돌아보면 그동안 교회를 한 몸이란 시각으로 이해하고 섬기지 못했다. 놀랍게도 내 삶에서 이런 한 몸인 교회를 경험하지 못해 공동체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말로는 공동체성을 말해왔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공동체성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 살아온 삶이 아닐까?
서로 더 중요한 지체가 되려고 경쟁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젊은 세대를 세운다고 하는 방식도 어쩌면 예전의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님,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종을 가르쳐 주님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세우게 하소서. 서로 같이 돌보는 그런 공동체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세우듯 이 종이 그렇게 공동체를 세워가는 종이 되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