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라 (이사야 32:9-20)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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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라 (이사야 32:9-20)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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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라 (이사야 32:9-20)


  <스콘> 앱 개발을 위한 40일 기도회 12일째다. 콘텐츠의 콘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집중과 다양성 무엇이 옳을까? 답 없는 대안을 찾아 긴 시간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다. 주님의 뜻을 분별케 하소서. 


  어제 사모님이 뇌출혈로 치료중인 예수사랑교회 목사님을 뵈었다. 오랜만에 뵙는 얼굴에 반가웠지만 사모님 소식으로 놀라셨을 마음에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나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님의 절묘한 개입과 인도하심에 얼마나 감사한지 ... (사모님 쓰러지신 그날 4/22일부터 의료보험에서 뇌 관련 질병에 대해 환자부담금이 대폭 줄었다고 한다.) 


  지금 요양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콧줄을 떼고 자가호흡과 식사를 할 수 있어야 집에서 재활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달 비용 약 이백만원 정도를 26살, 30살된 두 자녀가 직장과 알바로 힘써 감당하기로 했다고 한다. 주님, 속히 치료되게 하시고 예수사랑을 경험하고 온전히 전하게 하소서. 


  오늘은 금요세미나가 있다. 설렌 가슴으로 맞이하는 금요세미나에 위로부터 기름부으심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인도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안일한 여인들을 향한 심판과 <그때>로 표현된 날에 펼쳐질 회복을 다루고 있다. 심판과 회복, 이 둘은 항상 함께 간다. 


  존귀하신 우리 주님이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땅은 회복이 일어날 것이며, 회복을 이루기 위해 존귀하신 주님은 악한 이들은 심판하신다. 


  세상의 어떤 왕도 공의와 정의로만 다스리지 못하여 이 땅이 힘겹다. 그러나 진정 공의와 정의로 다스릴 존귀한 자이신 주님은 오늘도 존귀한 일을 계획하시고 존귀한 일에 서서 이 땅을 회복케 하시기에 희망이 있다. 


  본문은 희망을 말하면서 <안일한 여인들, 염려없는 여자들>을 향해 존귀한 자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9-10절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존귀한 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회복이다. 존귀한 자의 일에 서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다. 오늘 눈에 보이는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움에 도취되어 존귀한 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은 곧 당황하게 될 삶이라 말씀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12절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좋은 밭, 열매 많은 포도나무>는 분명 풍성함과 행복을 주는 요소다. 그런데 존귀한 자의 말을 듣지 못하고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다면 그것은 가슴을 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큰 울림을 주는 말씀이다. 


  오늘이란 자리가 존귀한 자이신 공평과 정의의 왕이신 주님을 따라 존귀한 일 즉 공평과 정의로 살지 않고, 오늘의 풍성함을 유지하려고 산다면 그 삶은 가슴을 치는 인생이 될 것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존귀한 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러면서 본문은 이렇게 말씀한다. 15절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이 부분을 원어적으로 직역하면 <영이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질 때까지>이다. 이것이 전체적인 해석에 있어 무난하게 여겨진다. 그러니까 성령이 임하는 하나님의 개입이 올 때까지 가슴을 치는 재난이 계속될 것이다. 그 이후에 회복이 일어나는데 광야 즉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그 아름다운 밭은 이전의 아름다운 밭을 그저 야생 숲으로 여길 만큼 놀랍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아멘.


  존귀한 자가 다스리시며,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주님의 나라에 이런 놀라운 평화와 안전함과 풍성함이 넘쳐날 것이니 존귀한 자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오늘 내 삶이 어떤 상황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존귀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그 말씀에 순종되고 있느냐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19-20절은 결론이다.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이 말씀은 새번역 성경의 번역이 좋다.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 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 너희는 복이 있다.’


  메시지 성경의 번역은 해석에 가깝다. ‘너희가 자랑하던 숲은 다 베어질 것이고, 너희 힘을 과시하던 도성은 초토화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물이 넉넉한 밭과 동산을 일구고, 가축들을 자유롭게 풀어 기르며 복된 삶을 누릴 것이다.’


  존귀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존귀한 일에 참여한 이들에게 펼쳐질 진정한 회복의 모습이다. 존귀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일에 서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여 광야 같은 땅을 아름다운 밭으로 만들기에 이것이 진정한 복이다. 아멘. 


  오늘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좋은 밭이냐 광야이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생은 모두 좋은 밭을 선택하고 그래서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이제 염려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존귀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신앙은 막연한 그림이 아니다. 실제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선택과 순종의 삶이다. 오늘의 안전과 풍성함을 지키기 위해 어리석은 삶을 선택하는 일이 많은 것이 세상이다. 신앙을 가졌음에도 앗수르의 침략에 유다는 애굽을 선택하여 염려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일년 남짓 지나면 당황하리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반대로 존귀한 자의 말을 듣고 일어나 존귀한 일에 설 때 비록 우박이 쏟아져 밭이 광야처럼 되어도 광야는 아름다운 밭이 될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하신다. 


  주님, 이 종이 오늘도 존귀하신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여 일어나 존귀한 일에 서게 하소서. 오늘이란 눈에 보이는 안전과 풍성함이 아니라 진정 존귀하신 주님을 듣고 따르는 자 되게 하소서.     

   

  * 예수사랑교회 이순옥 사모님 후원금은 주일까지 모금을 완료하여 월요일 후원하신 교회와 후원자의 이름으로 전달하겠습니다. 

(국 910601-01-449122 라마나욧선교회)


  <라마나욧 선교회 중보기도 제목>

1. 2022년 예수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변화되게 하소서. 

2. 스콘(스스로 창조하는 콘텐츠)앱이 젊은 세대의 플렛폼으로 설 수 있도록 

3. 라마나욧선교회의 사단법인 작업이 잘 이루어져 건강한 선교단체 되도록 

4. 30억 씨드머니가 속히 모금되어 사역이 정상화되도록  

5.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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