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6-7 [두려움은 없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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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6-7 [두려움은 없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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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6-7]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복음(福音) : 두려움은 없다]-2


   자신의 묵인 하에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 집사의 모습을, 바울은 자주 떠올리곤 했을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뒀지만, 그의 당당하고도 힘찬 신앙 고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 내놓을 수 있는 저 당당함은 대체 무언인가?, 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예수 믿는 자들이 이단에 빠진 거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바울은 이 후,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영)”이라는 말로 권면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두려움은 낙심을 불러오기 때문이고, 낙심은 의욕을 불사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면 짓눌리게 됩니다. 짓눌림이 반복되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악한 영의 실체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담대함과는 정 반대의 개념으로 정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살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살게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기 전의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그 음성이 들려오는 곳을 향하여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은 인간의 첫 번째 이성적 감정인 ‘두려움’에 짓눌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지음 받은 아담이 이성적으로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불순종의 결과로 생겨난 마음입니다. 아담은 그 전까지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심어 주신 본능에 의한 기쁨과 즐거움만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찬송하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기쁨과 즐거움 없이는 찬송을 부를 수 없습니다. 찬송을 부르면 더욱 큰 즐거움과 기쁨이 넘쳐납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본능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창조주의 DNA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경 교리의 핵심이 사람 몸에 이미 심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라는 슬로건과, ‘AGENDA 2020-2030’ 아래에서 이 세상을 RESET 하기 위해 악의 카르텔을 이루어가면서 큰 성 바벨론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땅의 짐승에 속한 음녀들이 등장하고 그 음녀들이 바다에서 올라오게 될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해 어리석고 미련한 짓들을 벌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 찬성과, 페미니즘과, WCC, WEK 및 그들 상호 간의 관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짐승의 표를 받은 짐승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은 기계 관련 전공서적을 두 권 정도 읽고 그 기계를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스스로를 맹신하여 복잡한 기계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막상 들어가보면 책에서 예시한 고장 사례와 수리 예시가 현실과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레버를 좌로 몇도 움직일 것인지, 게이지를 몇 눈금에 맞출 것인지, 파란색 버튼인지, 초록색 버튼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기계가 완전히 망가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혹시 폭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막막한 그 현실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게 됩니다. 이 모습은 아담의 타락 이후, 두려움 가운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세상이 주는 편안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과 함께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같은 그럴듯한, 또 다른 세상을 펼쳐 나가려는 이상주의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이 현상이 끊임 없이 반복 되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과대포장 및 과대평가, 곧 교만 때문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을 향합니다. 그 두려움이 그들을 약하게 만들고, 그 약함이 그들의 영혼을 강타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분명한 선악의 기준선 안에서 죄인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불분명해진 선악의 기준은 이기심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 이기심은 두려워하는 그들을 멸망의 문으로 던져 넣습니다. 이것이 멸망하는 짐승처럼 살아가는 자들의 최후입니다.


그러다 보니 초조해지고 안절부절 하게 되며, 예민해 집니다. 짜증이 나고 자신이 늘 곤경에 처하는 듯한 피해 망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피해 망상은 육적, 정신적, 도덕적, 영적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이 어둠에 속해 있다는 확실한 증거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 처럼 어둠과 빛은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공존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어둠은 저주와 사망이고, 빛은 축복과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둠은 세상이고, 빛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사단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삼손의 의미는 빛입니다. 삼손을 미혹한 여인 데딜라의 의미는 어둠입니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게 될 때 어떤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지는 삼손의 이야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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