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편애만큼 : 창37~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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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메시지 코너는 원고 중심으로 올립니다.

야곱의 편애만큼 : 창37~38장

와우! 이제 창세기 37장에서 38장 <통으로 숲이야기 : 통숲>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 : 야곱의 편애, 그 깊이만큼 다른 아들들은 아버지로부터 멀어집니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하는 라헬이 죽자 야곱의 사랑은 요셉에게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베냐민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에게는 사랑이었지만 야곱의 남은 3명의 부인들과 10명의 아들들에게는 불공평이고 아버지의 독선이자, 지독한 편애였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편애는 가정의 불화를 만드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20년 만에 형 에서를 만나러 나가면서 자신의 편애를 극명하게 드러냈었습니다.

오해에서 시작된 두려움은 점점 커져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까지 해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3단계 포지션'까지 만드는 작전을 생각해냅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최전선'에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들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로 레아와 레아가 낳은 아들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안전선 안에 라헬과 라헬이 낳은 요셉을 세웠습니다.

라헬은 그때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인생 최고'의 정점(?)을 찍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와 레아가 낳은 야곱 아들들 빌하와 실바 그리고 그녀들이 낳은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에 대해 말 그대로 '절망'했을 것입니다.

결국 야곱의 편애는 스스로 가정의 갈등과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두 번째 포인트 : 옷으로 아버지를 속인 야곱이 옷으로 10명의 아들들에게 속습니다.


이 사건의 시작은 야곱의 편애 때문이었고 요셉의 꿈은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야곱은 형 에서의 옷을 입고 아버지 이삭을 감쪽같이 속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얼마 가지 못해 곧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자신의 10명의 아들들에게 옷으로 더 감쪽같이 속게 됩니다.

야곱의 10명의 아들들은 요셉이 입었던 채색옷에 숫염소의 피를 묻혀서 야곱에게 가져옵니다.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찢기고 먹힌 줄 알고 오래도록 애통해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10명의 아들들은 그 연출과 연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야곱을 감쪽같이 속였을 뿐 아니라 22년 동안 대동단결(?)해서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을 판 것에 대해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혼자 채색옷을 입으며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한 몸에 받았던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린 이 사건은 놀랍게도 22년 후에 해석이 됩니다.

그동안 해석되지 않았던 고난이 실상은 하나님의 큰 구원 계획의 한 단계였다는 것을 요셉은 깨닫게 됩니다.

이후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간 지 22년 만에 다시 형들을 만나게 됐을 때, 요셉이 10명의 형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를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7)



세 번째 포인트 : 유다는 3번에 걸쳐 형제 관계를 설계합니다.


유다는 레아가 낳은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마치 장자처럼 가족 내에서 늘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유다는 12명이나 되는 형제들 사이에서 크게 3번 형제 관계를 설계했습니다.

첫 번째 설계는 "요셉을 팔자"(창37:27)입니다.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세겜을 거쳐 도단까지 10명의 형들을 찾아오자 요셉의 10명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자, 살리자, 팔자"라며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때 유다의 설계 "요셉을 팔자"가 최종결정이 되어 요셉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두 번째 설계는 이후 아버지에게 "자신을 담보로 베냐민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창43:9)고 말한 것입니다.

요셉을 잃었다고 믿고 있었던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만은 결코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흉년이 지속되는 가운데 애굽 총리의 명령과 굶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야곱은 반드시 베냐민을 내어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어느 누구도 야곱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유다가 아버지 야곱이 안심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제시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두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아버지에게 맡기며 자신이 베냐민을 책임질 테니 내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냐민을 내어줍니다.

결국 유다의 이 설계로 12형제가 애굽에서 처음 모이게 됩니다.

유다의 세 번째 설계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남겠다"(창44:33)는 것입니다.

애굽 총리 요셉이 은잔 사건을 만들고 베냐민을 애굽의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이때 유다는 아버지 야곱을 위해 베냐민은 아버지께로 보내고 자신이 베냐민 대신 애굽에 남아 종이 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후 유다의 이 선택이 결국 요셉의 응어리지 마음과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모두 녹였던 것입니다.

어쨌든, 유다의 제안에 따라 형제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므로 요셉은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통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 즉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15:13)라는 말씀이 성취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네 번째 포인트 : 유다는 죽은 두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37장을 읽고 38장 없이 39장으로 넘어가도 이야기 흐름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만큼 창세기 38장의 내용은 독특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38장은 그냥 넘어가도 될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66권 전체가 '원 스토리(one story)',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어지고...

성경 전체 숲에서 보면 창세기 38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 38장은 야곱의 넷째아들인 유다가 주인공입니다.

아버지의 지독한 편애에 맞서 유다는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가문 혈통의 순수성을 버리고 가나안 여인과 결혼해 아들 셋을 낳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세 아들 가운데 두 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함으로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 두 아들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아들을 가슴에 묻고 나서야 유다는 아버지 야곱의 울음이 귓전에 울려옵니다.

요셉이 짐승에 의해 죽은 줄 알고 밤새 울었던 아버지 야곱의 그 슬픈 울음이 말입니다.

그제야 유다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갖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 보다 더 편애의 늪에 빠져 베나밈에게 집중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보듬기 위해 다음에는 아버지 야곱을 향해 설계 들어갑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 : 다말은 유다를 크게 바꿔놓습니다.


유다가 실질적으로 아버지 야곱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만듭니다.

다말은 유다의 큰며느리였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큰아들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의 '계대결혼법'즉, '형사취수법'에 의해 다말은 유다의 둘째아들 오난을 통해 자식을 얻고 그 아들이 엘의 후손이 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아들 오난이 그 일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도 하나님 앞에서 죽게 됩니다.

유다의 두 아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며느리에게 탓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고 셋째아들은 다말에게 주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며느리 다말을 통해 유다는 손자(?)라 해야 할지 아들이라 해야 할지,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얻게 됩니다.

유다는 처음에 다말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말을 불에 태워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숙하지 못한 며느리에 대해 가차 없이 처벌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말이 자신으로 인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유다의 모든 의(義)가 깨지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는 다말을 향해 "나보다 옳도다"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유다는 베레스와 세라를 데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로 돌아갑니다.

유다는 자신의 모든 부끄러움을 안고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그때부터 실절적인 장자의 모든 역할을 맡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1:1-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요셉도 아니고 베냐민도 아닌 바로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시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5:5)

유다의 성숙은 결국 그 가정이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그는 이후 유다 지파를 세우고, 다윗의 가문을 이룹니다.

즉, 유다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다윗의 조상이며 그 가문에서 우리 예수님이 태어나시게 된 것입니다.


※ 본 내용은 영상에서 옮겼으며, 저작권은 '조병호 통박사'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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