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만든 최고의 축복 (창세기 50:22-26)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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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만든 최고의 축복 (창세기 50:22-26)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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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만든 최고의 축복 (창세기 50:22-26)


‘...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 언제나 너에게 귀울이시니...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 ’


이제 10월이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이 가을에도 주님의 은혜가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모든 민족의 백성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한다. 10월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일이 자유롭게 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 주님, 이 땅을 치료하시고 속히 만남이 자유로운 이 땅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요셉의 말년과 죽음 그리고 그가 한 유언이 나오고 있다. 22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단순한 말 같지만 39년의 상처를 극복한 가정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임을 기억할 때 이것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한 행복인지를 새삼 느껴본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노래한 시편 기자의 고백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것이리라.


요셉의 가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상처에도 함께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아픔으로 만남을 포기한채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대인가? 진정 상처의 치료가 없으면 요셉의 가정은 그야말로 복수혈전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런 용서와 치유의 주인공인 요셉 말년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23절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의 말년은 그야말로 증손자까지 보면서 손주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말년을 보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는 <슬하>다. <베레크 – 무릎>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 살아가는 요셉의 말년을 기록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이 단어가 요셉이 그 손주들까지 자기 자녀로 입양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이것은 상처가 극복된 요셉의 말년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 생각한다.


증손주의 재롱까지 보면서 인생 말년에 평안과 행복을 누린 요셉의 말년이다. 만약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 속에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면 그의 말년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자신의 과거 상처를 끄집어내어 형제들을 난도질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 속에서 자녀도 손주도 돌아보지 못한 채 불행한 삶으로 마쳤을 것이다.


용서와 화해를 이룬 요셉은 놀라운 예언과 유언을 준다. 25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용서를 통해 화해를 이룬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과 지혜와 통찰력이 아닐까? 요셉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예언한다. 여기서 돌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이 무력해진 그래서 자신을 살피기도 어려운 순간 그래서 더 살아야 한다고 외쳐야 할 순간에 요셉은 온 민족을 돌보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그렇게 예언하고 그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함께 올라가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짧은 다섯 구절의 말씀이지만 요셉이 누린 최고의 축복이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업적을 세우고, 명성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세상은 말한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업적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그 형제들과 연합하는 자로 서기 위해 그 형제들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형제들은 요셉에게 진정성을 보여준 것이 거의 없다. 늘 자신들의 한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요셉에게 부담만 지웠을 뿐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명임을 알고 겸손히 그들을 품고 용서함으로 화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오늘 삼대에 걸친 손주들 증손자까지 보면서 그들과 함께 말년을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놀라운 예언을 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분명하게 찾아 마지막을 정리한 마지막이 최고로 멋진 인생을 살아냈다.


나도 이런 멋진 마무리가 되고 싶다. 이런 멋진 마무리의 핵심 키워드는 용서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그는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마지막에는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하였더라.>까지 하였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것은 요셉이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분명히 안 요셉은 그 은혜를 힘입어 형제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고 이렇게까지 행함으로 형제와 연합하는 최고의 축복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진정한 평화를 맛보며 증손주까지 무릎에 앉히고 평안함과 지혜로움속에 마지막을 최고로 만든 인생이 되었다.


오늘 내가 이루어야 할 용서와 화해의 시작은 어디일까? 간절한 말로 위로해야 할 사람은 누가 있을까? 분명 괜찮은 것 같지만 껄그러운 관계들에 대해 간곡한 위로를 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


오늘 부족하지만 간곡한 말로 위로를 전하는 하루의 삶이 되자.


주님, 오늘도 내 삶이 용서를 시작하는 날 되게 하소서. 이 종이 주님이 베푸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를 주신 목적이 바로 용서를 선포하여 하나로 만드는 사명임을 깨닫고 실천되게 하소서. 이 종에게 지혜와 힘을 더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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