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요한복음 5:10-18)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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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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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요한복음 5:10-18)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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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요한복음 5:10-18)


  <스콘> 앱 개발을 위한 40일 기도회 9일째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하게 된다. 작은 마음을 돌이켜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낀다. 내 삶에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는 놀라운 영광을 볼 것을 믿는다. 주님 ~


  오늘은 토브성경 강의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위한 모임이 오전과 오후에 이어져 진행된다. 수고하실 이순남 목사님과 전웅제 목사님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주님 ~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38년된 병자가 치료되어 일어나 자기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을 본 유대인들의 깜짝 놀랄 반응이 나온다. 10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표준 새번역으로 이 장면을 보면 이런 말이다.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기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메시지 성경의 번역은 이렇다. 

  <오늘은 안식일이오. 자리를 들고 다녀서는 안 되오. 그것은 규정을 위반하는 일이오.>


  <안식일>이 문제다. 38년 동안 누워서 집에서도 살지 못하고 베데스다 연못에서 살던 사람이 치료되어 이제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려는데 <안식일>이라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아니 무슨 규정이 그런 규정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안식일이 무슨 날인데 38년이나 연못가에서 누워서 있던 사람이 일어나 자기 침상을 들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가? 


  최초의 안식일을 지키신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본다. 창2: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여기 안식하다는 단어는 <쉬다, 그치다, 중지하다>란 뜻을 가진 단어이다. 당연히 이 병자에게 안식은 질병의 삶을 중지하고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쉬어야 한다. 그의 38년을 고통케 했던 베데스다의 삶이 중지되는 것이 이 사람의 안식이다. 그런데 누가 도대체 이 사람에게 안식을 범했다고 외치는가? 


  가장 위대한 창조의 일조차도 하나님은 멈추시고 안식을 취하시고 우리로 그 안식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이다. 하물며 질병의 삶이 멈춰진 이 자리에 이 병자의 삶을 중단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이 진정 안식이 아닌가? 


  무슨 규정이 이렇게 변질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돌아보면 죄성을 가진 인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그야말로 책상에 앉아 규정을 들추며 <맞다, 틀리다>를 외칠 때 벌어짐을 깨닫는다. 나도 이런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지금도 이런 규정을 따지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그런 나를 만나곤 한다. 주님 ~


  사랑이 규정으로 표현될 수 없다. 주님의 역사가 규정을 따라 일어날 수 없다. 규정 즉 기준을 가지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규정은 오늘 38년 된 병자를 치료된 후에도 베데스다에 가두는 그런 어리석은 일이 됨을 묵상한다. 이 주인공이 바로 나임을 본다. 


  며칠 전 예수사랑교회를 섬기시던 사모님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평생 음악학원을 하면서 개척하신 목사님의 생활을 책임지셨던 분이다. 그렇게 헌신하며 조금 성도들이 모여질 때 음악학원을 내려놓고 사역에 전념하셨다. 그런데 코로나가 오면서 성도들이 모일 수 없게 되고, 성도들이 40%나 흩어지면서 생활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목사님은 이중직을 감당하며 이 어려움을 버텨내었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싸우던 지난 4월 22일 사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목사님은 사모님을 돌보시랴 가정과 교회를 책임지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가신다. 그런데 퇴원하여 재활 치료를 받으려 하니 빌라 4층에 살던 목사님은 큰 낭패에 빠졌다. 재활 치료를 받으려면 매일 사모님을 업고 4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유대인처럼 <기도해야지> 했다. 그러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며 <작은 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며 깜짝 놀랐다. 내가 바로 유대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말이다. 


  주님, 그렇습니다. 이 종이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작은교회를 섬기라고 부름을 받았는데 이들을 섬김에 규정을 따라 일하는 자가 되었고 그들의 기쁨과 아픔에 반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대인처럼 엉뚱한 소리를 외치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백성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외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그렇다. 나는 종이다. 주님이 이 소중한 사역자를 위해 일하시기에 나도 일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역자의 약함을 다 감당해야 할 사람은 아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만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자에게 진정 주님의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목사가 되고 그런 선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신문지 한 장의 정신으로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님을 보아야 한다. 주님이 보시는 영혼을 보아야 한다. 지금 <스콘> 앱 개발을 위한 40일 기도회가 진행되기에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하고 있는 때이지만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님을 보아야 한다. 내가 정한 규정을 넘어 주님을 놓친다면 모든 것은 거짓이 된다. 주님 ~


  주님, 이 종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 종이 진실로 주님의 뜻을 규정이란 이름으로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처럼 반응할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소서. 지금 내가 진행하는 일을 보느라 오늘 당장 힘겨움에 빠진 이를 외면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주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경주하게 하소서. 주님처럼 달려가는 날 되게 하소서. 


 * 예수 사랑교회 이순옥 사모님의 빠른 치유와 재활을 위해 기도부탁합니다. 


<라마나욧 선교회 중보기도>

1. 30억 씨앗자금을 통해 작은교회에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게 허락하소서.

2. 온라인 플렛폼 스콘(스스로 창조하는 콘텐츠)앱을 통해 작은교회(젊은세대사역자)의 다리가 되게 하소서.

3. 2022년 예수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춘 새로운 라마나욧이 되게 하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5. 라마나욧선교회의 사단법인 작업을 통해 건강한 선교단체 되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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