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묻자 (마태복음 16:21-28)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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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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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묻자 (마태복음 16:21-28)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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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묻자 (마태복음 16:21-28)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찬양하라

경배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경배하라


오늘 아침 이 찬양이 내 영혼을 깨운다.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라는 이 찬양의 가사가 ~ 주님 오늘도 내 영혼이 깨어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날 되게 하소서.


목회사관학교 졸업생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사관학교 초창기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쁨으로 함께한 역전의 용사들이다. 주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어떤 말씀으로 오늘은 인도하실까?


본문은 <이때로부터>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즉 앞에서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과 주님의 축복 즉 교회를 세우신다는 약속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천국 열쇠로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다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 이후다. 21절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때로부터 ~ 비로소>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신 후 자신이 이 땅에 온 궁극적 사명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 사역의 결정판이며,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을 본격적으로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믿음의 고백을 한 베드로가 말한다.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 <항변하여>를 표준새번역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들었다.>고 번역했고, 우리말 성경은 <거칠게 소리높였습니다.>로 번역하며, 메시지 성경은 <항의했다.>고 번역한다. 이 장면을 묵상해 보면 어떤 경우든 베드로가 매우 흥분되어 있음을 본다. 왜 베드로는 이렇게까지 흥분한 것일까?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인간적인 열정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붙들고’(프로스라보메노스)란 ‘프로스’(옆으로 )와 ‘람바노’(손에 취하다, 사로잡다 )의 합성어로 마치 자기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는 것처럼 강압적으로 붙잡고 강권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흥분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에서 예수님의 칭찬과 축복의 말씀으로 고조된 감정이 예수님의 진정한 사역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머물러 버린 것이다. 이것이 죄된 인간의 한계다. 인간은 늘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이 있다.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통해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은혜의 자리에 머물고 싶은 심정이 그런 것이다. 베드로 입장에서 지금 고난이란 단어는 생각할 때가 아니다. 특히나 예수님이 죽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여기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23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게 하신 복 있는 베드로가 순간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통로가 되어 버렸다. 이것이 인간 실존의 현주소가 아닌가?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인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막아서고 인도하려고 한다. 인간적인 감정과 열정으로 말이다. 이런 가운데 사탄은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의 길을 막어서고 넘어지게 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인간적인 열정과 감정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위하는 것들이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임을 많이 경험했다.


주님은 명쾌하게 제자의 길을 이렇게 정리하신다. 24-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다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내적으로는 자기 부인과 외적으로는 역경 가운데서의 적극적 순종이 있어야 한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가?


베드로의 흥분된 감정과 주님을 향한 인간적 열정이 부인되고 주님의 말씀 앞에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 말씀하신다.


오늘 인간적 열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주님의 길을 막아서고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는 사탄의 생각이라는 것을 깊은 묵상의 재료로 삼으며 이 하루의 삶을 준비하게 된다.


만약 베드로가 주님이 하신 이 말씀에 인간적 열정을 내려놓고 먼저 주님의 말씀을 자세히 물으며 그 뜻을 알고자 했다면 어떻게 이 장면이 변했을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의 부분이 이 자리다. 늘 겸손히 그 일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 내 감정으로 판단하고 말해버린다.


분명 내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지만 내 감정대로 표현하여 결국 그것은 사탄의 생각에 속은 행동이 되곤 했던 실패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무수히도 했던 실패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베드로 같은 욱하는 성품이 내게 있다.


오늘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 감정으로 베드로처럼 말하여 실수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과 주님이 보내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한 번 더 물어보며 그 뜻에 따르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아멘. 아멘.


내 감정, 내 기분을 넘고,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아니라 진정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한 번 더 겸손히 묻자. 그리고 나를 지키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자가 되자. 아멘. 아멘. 아멘. 말씀없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자리가 되는지 주님의 말씀에 내 감정대로 반응하는 것이 위험한 것임을 알고 오늘도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이 종으로 주님의 말씀앞에 한 번 더 묻고 겸손히 그 말씀의 뜻을 알고 순종케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모여져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4.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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