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우리에 머물러 있으라 - 이장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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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우리에 머물러 있으라 - 이장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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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우리에 머물러 있으라


양에게 있어서 우리란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고 하루를 지내다가 해가 저물면 우리로 들어와 몸을 쉬며 다른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양들의 집이며 안식처입니다. 양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있는 우리가 없다면 양들의 생명은 맹수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들염소들이 살고 있는 벼랑, 인적이 드물고 풀이 있는 곳에 있는 동굴은 양의 우리나 목자들의 숙소로 이용을 했습니다. 굴 앞에는 돌로 담을 쌓고 그 위에 가시로 덮어 맹수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사울의 추적을 피하여 엔게디 황무지로 도망한 다윗을 잡기 위해서 사울은 특별히 선발한 정예용사 삼천 명을 거느리고 들염소들이 있는 바위 벼랑으로 가다가 그만 발을 가리는 일이 급해서 길 가에 있는 양의 우리가 있는 굴로 들어갑니다(삼상23:3) 원수는 외나무다리에게 만난다고 했나요? 그 동굴 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굴 깊은 곳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굴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볼 일을 보고 있습니다. 사울은 쫓는 자, 다윗은 쫓기는 자로 길 가에 있는 양의 우리에게 만난 것입니다.


개역성경은 “사울이 그 발을 가리기 위해서”로, 개역개정은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갔다”고 표현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불경스러운 표현을 지향했기에 용변을 보기 위해서 굴로 들어간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갔다는 것은 사울이 호위병 없이 혼자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동굴 안에 혼자였고, 그것도 용변을 보는 무방비 상태이니 굴 안에 있었던 자신을 죽이려는 마음만 다윗이 먹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지만 앞으로 절대 위기에 처하게 될 사울의 상황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발걸음을 다윗에게로 인도하시어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의 우리에 있는 다윗과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고,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안전한 처소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피난처이며 가장 안전한 처소입니다. 사울이 양의 우리에 들어간 것은 잠시 어쩔 수 없어서 볼일을 보기 위해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옵니다. 사울에게는 양의 우리가 볼일 보는 장소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볼일이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나옵니다. 다시는 양의 우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니 사울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볼일 보는 장소가 아니라 안전한 거처이며 진정한 피난처입니다.


다윗이 ‘양의 우리 깊은 곳에 있더니.’에서 ‘있더니’는 ‘거하다, 앉다’라는 뜻으로 그 양의 우리에 지속적으로 머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굴 양의 우리에 다윗이 계속적으로 머물고 있었다는 것은 사울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그 동굴 양의 우리는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의 은신처이며 피난처였음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염소 바위 근처에 많은 동굴 중에서 한 곳을 택하여 다윗은 계속해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 동굴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이며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을 보면 사울과 같이 그냥 한번 왔다가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속 거하면서 주님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는 성도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안식처가 필요하고 보호처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방패와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만 신뢰하며 주님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글, 이장우 목사

성남열방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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