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격려의 욕망 (마태복음 11:7-19) - 박정제 목사
인정과 격려의 욕망 (마태복음 11:7-19)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있다. 공사중, 변신중, 이사중으로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을 공사장에서 살다보니 점버는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털어지지 않을 정도다. 다행히 이제 먼지가 나는 공정이 끝나 나도 점버를 벗고 새 옷을 입느나. 오늘도 바닥 작업 두 번째 중도 작업이 있다. 최소 3번의 칠을 해야 하는데 오늘 다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주님, 인도하소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을 축복하소서.
어제도 후원자의 손길로 필요한 부분이 채워져 갔다. 날마다 소중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젊은 세대와 작은교회의 플렛폼과 비빌 언덕이 되는 라마나욧 <스페이스 R>로의 변신은 기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며 주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손길들을 통해 세상이 보는 작품으로 세워져 가고 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 받으소서. 아울러 함께한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손길들에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은혜가 넘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특히 젊은 세대와 작은교회의 플렛폼이 되기 위한 연결의 장소로서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의 준비는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들이 모여 놀라운 일들이 기대된다. 진실로 주님이 하시는 일이 측량할 수 없어 놀라울 뿐이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을 보내신 주님이 세례요한을 향한 진실을 쏟아내시는 장면이 나온다. 7-11절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여기서 주목된 단어는 <떠나매>이다. 정작 이 말씀을 꼭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격려가 필요한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꼭 들어야 할 것 같은 세레요한과 그 제자들이 떠나매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심이 오늘 묵상의 초점이 된다. 왜 그랬을까?
여기 핵심의 내용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세례요한이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자로 그 어떤 선지자보다 뛰어난 자라는 것이다.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이 꼭 듣고 싶었던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도 세례요한보다 크다는 내용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다음 이 소중한 진리를 말하는 것일까?
인생의 중요한 결정과 길은 결국 믿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인지라 세례요한은 확인하고 싶고 누군가의 격려를 꼭 받고 싶지만, 특히나 주님이 오셔서 그를 격려해 주시기를 원했지만, 그가 걸어가야 할 좁은 문 좁은 길은 그렇게 믿음 하나를 붙들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주님은 안타깝지만 그렇게 그의 제자들을 보내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행동하신 주님도 결국은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이 길을 걸어가셨음을 묵상케 된다. 사실 주님의 사명을 품고 걸어가면서 인간인지라 자꾸 사람의 인정과 격려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인정과 격려는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대단한 위력이 있다. 그러나 그 인정과 격려의 욕구는 결국 인간을 믿음의 길이 아니라 엉뚱한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주님은 알고 계신 것이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인정과 격려를 향한 갈망이 솟아오를 때 조심해야 한다.
나도 세례요한을 존경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살라는 부름을 받고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 속에는 오늘의 세레요한처럼 인정과 격려에 목말라 하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누군가 내 길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누군가 격려해 주기를 원하고 주님이 뭔가를 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나도 제자들을 보내 주님께 묻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나를 아시고 오늘 주님은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믿음의 길은 오직 믿음으로만 걸어야 한다. 누군가의 인정과 격려에 목말라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부르신 그 길을 향해 나가야 한다.
감옥에서 외친 바울의 고백이 생각난다. 빌3: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분명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기에 누군가의 인정과 격려가 필요한 시간인데 바울은 오히려 뒤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햐여 부름의 상을 위해 그저 달려갈 것이라 외친다. 이것이 진정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나는 인생 후반전을 살면서 그동안 살았던 삶을 향한 인정과 격려를 누리면서 살고 싶은 욕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때이다. 그럴 권리도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이제는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향해 칭찬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끝까지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주는 것이 세례요한이 받을 진정한 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라마나욧 <스페이스 R> 사역은 명예를 누리는 길이 아니라 인정을 쟁취하는 자리가 아니라 젊은 세대 사역자들에게 길과 통로가 되어주며 작은교회의 플렛폼이 되어주면서 나는 작아지는 자리여야 한다. 다음세대가 부흥으로 일어나야 하기에 ... 이것을 감당하려면 오늘 주님은 결정하라고 한다. 그 어떤 인정과 격려를 받으려는 욕망을 포기하라고 오직 믿음으로 걸어가라고 ~ 주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 아멘. 아멘. 아멘.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내 속에서 여러 가지 소리들이 나오려고 한다. 왜 ~ 그러나 나를 부르신 주님의 뜻이 이것임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주님은 그래서 나를 광야로 부르셨고 지금까지 그렇게 나를 이끌어 오셨다. 나는 이렇게 가야 한다.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스페이스 R에 모이는 세대들은 흥하여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주님, 이 종을 받으소서. 이 종을 붙잡아 주소서. 내 속에 세상의 인정과 격려를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제거하여 주소서. 오직 믿음으로 끝까지 이 길을 걸으며 이 길 끝에서 주님을 뵙는 자 되게 하소서.
※ 라마나욧선교회 변화를 위한 마무리 10일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를 품도록 주님이 꿈꾸신 공간으로 세워져 가도록
3. 모든 상황과 변수에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드러나도록
4. 이 공간에서 주님의 뜻만이 이루어지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