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6-14) - 박정제 목사

Spiritual letter

교회가 교회를 돕는다!

홈 > 말씀찬양 > 영성편지
영성편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6-14) - 박정제 목사

교회정보넷 0 65

255de7f2e269856ea59646c80f083f9a_1618969671_7643.jpg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6-14)


오늘 아침 이 찬양의 가사가 울림을 준다.

‘주님이 우리의 아픈 맘을 아시네. 가까이서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네.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던 그 주님이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시네. 혼자서만 세상을 사는 듯이 주가 멀어 보이기만 할 때 우리는 바라 보아야 하네. 우리게 오셨던 그 주님을’


어제 저녁 10시까지 나도움 목사님을 모시고 온, 오프라인으로 <언텍트 시대의 심방>이란 주제로 다양한 다음세대 소통법을 함께 나누며 질의응답을 가지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넘 소중한 사역을 하는 젊은 세대 사역자의 멋진 발걸음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고 이런 친구들이 일어나면 다음 세대의 부흥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주님~


오늘은 다음세대 교회교육 대안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날이다. 그동안 준비하던 것이 변수가 생겼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묵묵히 갈 것이고, 만들 것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해도 우리는 벽을 두드리는 것이라도 해서 다음세대가 일어날 수 있는 교육 대안을 찾아낼 것이다. 주님 인도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은 주님을 믿는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하고 있다. 6-7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자중 하나> 하나의 공동체가 세워지려면 다양한 사람들이 연합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어디나 작은 자들이 존재한다. 작은교회를 섬기는 내게는 특히 이 단어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세상적 가치관 큰 것이 좋다는 사고에 젖어있어 이 작은 자중 하나라는 단어가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지를 말하면서 자신의 크기를 내세우면서 정작 작은 자 하나를 소홀히 여기면서 그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다.


그렇게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무서우므로 손이, 눈이, 발이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고까지 말한다. 8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정말 무섭다.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업신여김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일의 배후에 업신여김이 있음을 말한다. 10절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업신여기다>란 국어사전적 뜻은 <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이다. 지극히 작은 자 그것도 하나이기에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 세상적 가치관으로 당연하다. 자칫 작은교회를 섬기면서 그분의 섬기는 교회를 방문하며 이렇게 업신여기게 보였던 순간이 많았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나마저 그러면 정말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터인데 그렇게 나도 업신여기며 보았던 순간이 많았음을 자백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도 이 말씀이 없으면 그런 눈으로 사람을 보고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아시는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나를 깨우신다.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종으로 오늘도 <작은 자중 하나>를 소중하게 주님처럼 보는 사람이 되라고 이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린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12절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양 백 마리와 그 중의 하나란 숫자적 의미로 생각하면 99마리가 훨씬 더 소중하기에 한 마리를 포기할만도 한데 이 세상에 어떤 목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그 한 마리의 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렇게 결론을 맺으신다. 14절 ‘이와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버지의 뜻은 이 작은 자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이 땅에 아무리 작은 자라도 아니 그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아파하신다. 한 공동체가 될 때 어느 곳에서나 이런 지극히 작은 자중 하나는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뭔가 힘들게 하는 사람이고, 힘겨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포기하고 싶어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괜찮을 터인데 ~ 왠지 저 사람만 없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바리새인은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을 몰아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누군가를 업신여겨 그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나로 인해 실족하여 넘어진 수많은 얼굴들을 생각해 본다. 정말 교만해서 사람을 업신여겨 실족하게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니 이런 느낌도 없이 업신여김을 당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주님~


사실 돌아보면 나같은 죄인을 그래서 주님이 품어주신 것이고, 그 은혜로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서도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잊고 그렇게 업신여기며 살아가는 내 모습에 그저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말씀으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말씀해 주시는 주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주님~


이 종이 언제나 철이 들까요? 주님~ 사실 주님의 은혜는 잊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말이다.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받아주지 않아 포기하고 싶고, 아무래도 내 능력으론 도저히 안될것 같아 포기하고 싶고, 나와는 정말 맞지 않아 돌아서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주님의 뜻은 업신여기지 말고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아멘.


분명 내 힘으론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힘을 주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작은 자중 하나도 품어가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무수히 실패하고, 상처를 주지만,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길이시니까? 주님이 힘이시니까 말이다. 아멘.


주님,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이 종의 약함을 어루만져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종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나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는 주님의 제자로 서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이곳에 모여져 희망을 품고 일어나도록

4.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0 Comments
포토 제목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