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류자 인생 (창세기 19:4-11)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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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류자 인생 (창세기 19:4-11)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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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류자 인생 (창세기 19:4-11)


계절의 여왕 5월 벌써 7일이 지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주어진 사명의 자리를 감당하다 보니 아직도 계절의 맛과 멋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삶이란 자리가 주는 버거움에 하나님이 허락한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느끼지도 못한 채 갇혀버린 삶, 주님 이 하루 잠시라도 자연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오늘 이 찬양의 가사가 내 고백이 된다.

‘목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한 주간 사역을 마감하게 하실까?

본문에는 롯이 사는 소돔성이 왜 멸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4-5절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소돔성의 죄악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이들은 남의 집에 온 손님까지도 요구할 정도로 당당하게 요청하고 있다. 소돔 성읍에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를 확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그 성읍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을 시사해 준다.


죄의 성장성이 무섭다. 처음 죄는 발견될까 두려워 숨는다. 그러나 죄가 성장하면 죄는 이렇게 담대하게 공격성을 띠고 사람들을 지배하려 든다. 이제 소돔성은 죄가 조금도 숨지 않고 공격성을 가지고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는 지경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왜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는지를 알게 되는 대목이다.


이런 심각한 죄악이 난무한 곳에서 롯은 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좋아서 이런 죄악의 도성을 떠나지 못하고 롯은 이곳에 있었을까? 묵상하게 된다.


왜, 아마도 이런 죄악들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에게 주는 달콤한 이익들이 롯으로 하여금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동행하며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쾌락과 부요의 단맛으로 인해 롯은 멸망의 성 소돔을 탈출하지 못하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인생은 진리와 가치를 놓치고 돈이나, 명예나, 쾌락에 의해 움직이면 어쩔 수 없이 멸망의 성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롯은 이런 도시에 살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곳을 떠날 생각조차 없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말로 이 상황을 바꾸려 한다. 7-8절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롯은 분명 이것이 악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악을 막아서기 위해 그가 하는 말이 너무도 놀랍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것이 과연 믿음의 사람이 해야 할 말인가? 롯은 큰 죄악을 작은 죄악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카드 돌려막기를 하듯이 말이다. 롯이 이런 죄악의 도성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치 기준이 성경적이지 못하고 세상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는 나름 경건을 지키기 위해 나그네를 대접해야 한다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부랑아 같은 이들에게 내어준다고 말한 것이다. 말이 되는가? 가정을 지켜야 할 아버지가 할 행동이 아님에도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죄에 물들어 있는지를 보게 된다.


아마 그는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심판의 대상자가 되어버렸다. 소돔성의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았고 그의 경건은 이미 죄에 물들어 누구에게도 힘이 없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버려지듯이 말이다. 그들이 말한다. 9절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아브라함을 떠나며 많은 꿈을 꾸었고, 자신도 있었지만, 그는 무력한 모습으로 죄악의 도성이 멸망하는 현장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밀려나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거류하면서>라는 이 단어가 큰 울림으로 들려진다.


<거류자> 그곳에 살지만, 그곳 사람이 아닌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소돔에 살며 소돔이 되려고 몸부림쳤지만, 소돔이 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믿음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류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 천국 백성으로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가 이렇게 롯처럼 거류자 인생으로 마치는 안타까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주님은 오늘 물으신다. 너는 오늘 천국 백성으로서 네가 사는 세상에서 천국의 향기를 드러내고 있느냐고 말이다. 아니면 거류자로 세상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으로 롯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으신다.


나는 오늘 어떤 삶일까? 롯은 자신이 이러고 사는지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성과 롯의 가정이 멸망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내시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따라 천사들은 롯을 보호하신다.


천국 백성으로 거룩한 빛을 드러내고 싶지만, 실제로는 롯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류자 인생이 되고 마는 삶 그래서 멸망의 성 소돔을 구원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안타까운 한 사람 롯을 묵상하면서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주님~


왜 롯은 이렇게 되었을까?

죄의 교묘함과 은혜의 자리를 놓친 연고이다. 죄는 스며들 듯 우리의 삶에 티나지 않게 들어온다. 진리란 기준에 의해 날마다 점검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롯처럼 죄에 물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은혜의 자리속에서 진리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롯은 이 자리를 놓치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그곳에서 나름 잘 산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고 ~ 그러기 위해 말씀 앞에, 은혜의 자리에 담대하게 나와야 한다고 하신다. 아멘. 아멘.


주님, 이 종에게 오늘도 은혜를 부으소서. 이 종의 힘으론 세상의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죄악의 물결에 나를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기준에 서서 죄악을 파도를 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자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을 위한 중보기도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모든 사역을 통해 진짜 목사가 세워져 가도록

3. <스페이스 R> 사역이 자리를 잡고 다음세대 사역자를 일으키도록

4. 땡스기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세워지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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