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주일 [예수님의 두 음성]-2 현명인목사
현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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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20:04
승리주일 [예수님의 두 음성]-2
예수님은 신성을 드러내는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든지 그들을 물리칠 수 있으십니다. 어쩌면 이런 능력으로 자기를 잡으러 온 그 버러지 같은 인간들을 물리치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고통을 완전하게 느끼는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 누구라도 고문당하고 죽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픽션 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배신한 제자 가룟유다를 혼쭐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생각도 느낌도 없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분은 막강한 신적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제2 위격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적 권능이 나타난 첫 번째 음성을 포기하셨습니다.
첫 번째 음성을 포기하신 예수님은 땅바닥에 엎드려 두려워 떨고 있는 자들에게 두 번째 목소리로 다시 물으십니다. “누구를 찾느냐”, 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첫 번째 음성과 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내가 그니라” 그리고 자신을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자신의 제자들은 용납하고 그냥 보내 달라는 부탁의 말씀도 하십니다.
두 번째 음성을 들은 그들은 갑자기 땅바닥에서 일어나, 먹잇감의 약점을 발견하여 날카로운 이빨로 사정없이 살점을 물고 늘어지는 맹수들처럼, 예수님을 거칠게 잡아 채어 결박합니다. 신적 권능과 권위가 사라진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음성에서 권위와 능력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두 번째 음성 때문에 잡히십니다. 첫 번째 음성을 스스로 없애시고, 이 두 번째 음성으로 땅바닥에 엎드려진 자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에게 잡혀주십니다.
예수님이 만약 첫 번째 음성만 내신 상태에서 잡히지도 않으시고, 고난도 당하지 않으시고, 죽지도 않으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 가운데서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나약하고 인간적이고 잡힐 수 있는 이 두 번째 음성은 우리에게 은혜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셨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 때문에 두 번째 음성을 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하여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전가 되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모든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이 없으면 우리의 죄악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은 창조 이래에 가장 은혜로운 음성입니다. “내가 그니라” 하신 이 두 번째 음성은 죄인을 살리는 가장 애절한 은혜의 음성입니다.
“내가 그니라”하신 첫 번째 신적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내가 그니라”하신 인간의 두 번째 음성을 내시고 예수님은 스스로 잡혀주십니다.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영광과 권세와 위엄을 버리신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스스로 연약한 자가 되십니다. 예수님 자신의 음성을 연약하게 만드신 것이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신의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신적 음성으로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두 번째 인간의 나약한 음성으로 사역을 이루시고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이 두 번째 연약한 음성을 내심으로 모든 만민 위에 뛰어난 자가 되셨고, 만왕의 왕이 되셨고, 만유의 주재가 되셨고, 세상의 심판주가 되셨습니다. 또한 이로써 율법을 완성하게 되셨고, 결론적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제2 위격으로 오신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권위와 능력의 음성을 내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자존감으로 여기고,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음성으로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자신보다 강한자 앞에서는 약해지고, 자신이 만만하게 여기는자 앞에서는 빈번하게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게 그의 존재감이요, 그것 밖에 내세울게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트라우마의 영향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건 좋지 않습니다. 매우 나쁩니다.
이것은 전혀 은혜롭지 못합니다. 전혀 덕스럽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도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웃을 시험에 들게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죽으라!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멀리합니다. 알던 자들도 그의 실체를 알게 되면 점차 그를 멀리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죽마고우와 같은 오래된 친구가 없습니다. 공통적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그런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겁니다. 그가 절실하게 깨닫기 전에는 답이 없습니다. 글쎄요, 자연인이 되어 산 속에 혼자 처박혀 살던가, 아니면 죽어야만 끝납니다.
예배당에 매 주일 발을 들여놓는 교인들 가운데,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악용하여, 잦은 분노를 표출하고 주변인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기도 할 겁니다. 회개하겠죠. 그러나 그것은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악용하여 자신의 심한 결함을 정당화 하는 거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죄의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단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로 받으신 하나님의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은혜의 음성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음성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남에게 내어주는 음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인생은 자신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닌, 남을 위해서 사는 인생입니다.
첫 번째 음성은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고 남을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신을 뺀 나머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고 힘들어집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음성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두 번째 음성을 내면서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은혜의 음성을 내도록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혀 없는 자입니다.
"내 백성이 나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결국 그는 망하는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로 하여금 두 번째 음성을 내면서 살도록 역사하실까요? 은혜의 음성은 세상의 권위를 잃어버려도 하늘의 권위를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의 두 번째 음성 역시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음성이 됩니다.
이 두 번째 음성을 갖고 있는 자가 가정을 화목하게 합니다.
이 두 번째 음성을 갖고 있는 자가 교회를 세웁니다.
이 두 번째 음성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교회에 은혜가 넘치려면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을 갖고 있는 성도로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을 소유한 자를 진정한 리더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을 갖고 있는 자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두 번째 음성을 갖고 있는 자를 천국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약해 보이는 두 번째 음성이, 강해 보이는 첫 번째 음성보다.크고 높고 강하고 위대합니다. 첫 번째 음성은 자신을 드러내지만 두 번째 음성은 예수님을 드러내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사역도 두 번째 음성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는 약해 보이는 것만 같은 두 번째 음성에서 임하게 됩니다.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예수님과 반대 되는 첫 번째 음성을 내는 인간은 교만한 인간입니다. 그의 이름은 인간 역사에서도 악명으로 기록되고, 하나님의 생명책에서도 지워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두 번째 음성을 내는 인간은, 겸손한 인간입니다. 그의 이름은 인간 역사에서도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책에도 기록됩니다.
또 첫 번째 음성을 내는 자는 그곳이 교회든 세상이든 자기가 선 곳에서 분열과 분란을 일으키고, 두 번째 음성을 내는 자는 자기가 선 그곳에서 화합을 이루어나갑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음성을 소유한 자에게는 영원한 천국을 주시고, 첫 번째 음성을 소유한 자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으로 던져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를 주실 때에는 반드시 자비하신 두 번째 음성으로 주십니다. 오늘 이 예배당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모두 두 번째 음성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두 번째 음성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직접적인 승리로 적용 될 것입니다.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름다운열매맺는 좋은나무교회
<아둘람복음공동체ㅣ현명인목사>
Adullam Ministry &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