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음이 머무는 곳 - 박정제 목사
제목 : 작음이 머무는 곳
본문 : 마태복음 9:9-13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 은행대출을 받아 잔금이 해결되면 정식으로 라마나욧선교회란 이름의 선교단체 건물이 생겨난다. 매우 조심스러운 하루다. 왜냐하면 작은교회와 절망한 젊은 세대 사역자들의 플렛폼과 비빌언덕이 되어 이들을 하늘부흥의 주역으로 세우라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에도 어제도 매우 어려운 때에 소중한 분들이 마음이 담겨진 매우 힘겨운 후원을 해 주셨다. 삶이란 자리가 뻔한데 뻔하지 않은 것을 함께해 주시며 라마나욧선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있음을 전해주셨다. 얼마나 조심스럽고 책임감이 생기는지~
주님, 이제 라마나욧선교회가 120평 건물을 가지며 이 시대의 한 자리에 소중한 하늘나라 통로가 되는 이날을 축복하소서. 이것이 교만의 이유가 되거나 부패의 시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이 자리가 겸손으로 주님이 허락한 사명의 자리가 되고, 작음이 아픔인 이들의 희망이 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세상 나라의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정신과 가치가 구현되는 곳으로 이곳을 세워주소서. 이 거룩한 일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하늘의 은혜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이날을 축복해 주실까?
본문은 세리 출신의 마태란 제자를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은 세리를 부르시고는 이 집에서 함께 식사하며 그의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신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을 향해 비난한다. 9-11절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오늘 본문은 마태가 예수님을 따르는 아주 멋진 장면을 보여준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세관에 앉아 일하는 중에 부름을 받았다. 당시 세리란 자리가 백성들에게 매우 좋지 않은 인식을 준 자리였지만 반대로 돈을 버는 자리였음은 분명했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누가 부른다고 그냥 훌쩍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민족의 백성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자리를 지켜냈던 마태였다. 죄인과 동일시되는 세리란 자리를 그렇게 지켜내며 오늘도 세관에 앉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던 마태를 주님이 부르자 놀랍게도 순종한다. <일어나 따르니라.>
이 말은 이미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지만, 자신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님을 생각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음에 따르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나 또 하나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마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세리란 자리는 세상의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앞에 그 자리는 마태를 붙잡지 못했다. 오늘도 이런 마태들이 얼마나 많을까? 돈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온갖 욕을 먹고는 있지만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마태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삶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마태를 부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과연 오늘이란 삶의 자리가 다 만족스러워서 그 자리를 기쁨으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생의 자리는 100% 만족한 자리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자리를 부르심의 자리로 믿고 성실하게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가 가야 할 참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아멘.
본문은 이런 마태의 부르심의 자리가 식사의 자리로 이어지고 곧 심각한 논쟁의 자리가 되어버린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때 예수님은 이 소리를 들으시고 이렇게 유명한 대답을 하신다. 12-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주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라고 명하신다.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내가 원하는 것은 자비이지 종교행위가 아니다.>라고 번역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을 향한 행위이고,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행위이다. 그런데 주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자비를 원하고 종교행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이것을 배우라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명하신다.
제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가 없는 종교행위와 같은 제사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진정한 제사에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을 용서하고 함께 하나님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죄인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았다. 우리 속담에 나오는 대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하듯 그들은 자신들의 의를 지키기 위해 죄인들을 멀리했다.
그런 관점에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주님을 보니 이들이 이렇게 책망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배우라고 하시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새로운 진리를 펼치시고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죄인을 경멸하고 죄를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가 있는 곳에 있는 죄인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찾아가 그들을 건져내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바리새인의 삶을 배워왔다. 죄와 함께 죄인과 결별하는 삶으로 말이다. 죄와 싸우며, 정작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오늘 라마나욧선교회가 새로운 땅을 얻게 되는 이날 주님은 라마나욧선교회는 종교행위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죄로 타락하고 무너진 세대들을 품어 그들을 하늘부흥의 주역으로 세워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젊은 세대를 품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전혀 다른 세대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기에 오늘 주님의 이 말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 말씀을 배워가야 할 듯 싶다. 아멘. 아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는데 우리는 건강한 자들이 있는 곳에 병원을 세우려 한다. 라마나욧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고 진정 필요한 이들의 신문지 한 장이 되는 선교단체가 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진정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작음과 젊은 세대들을 품어 플렛폼과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아멘. 작음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주님, 귀한 사역의 자리를 열어주시고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소중함의 자리에 엉뚱한 일을 벌이는 바리새인처럼 변질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처럼 죄인과 함께하는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들 사역자들의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선교회가 되게 하소서. 언제나 주님이 대표가 되셔서 죄인과 함께하시는 그 긍휼의 마음이 부어진 곳이 되게 하소서.
※ 라마나욧선교회 변화를 위한 2차 50일 중보기도 요청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를 품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으로 세워져 가도록
3. 모든 상황과 변수에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드러나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