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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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의 예..

찬송가의 예.. 


만입이 내게 있으면(찬송가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 하겠네”

이 찬송은 청년들 보다 장년들이 더 많이 부르는 곡입니다. 설령 입이 만 개가 있다 할지라도 그 입으로 죄를 짓거나 망령을 부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찬송하는데 쓰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루 우리들의 입술에서는 과연 찬송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만 개는 그렇다 치고라도 한 입을 가지고서도 주님을 찬송하고 높이기 세우기보다는 저속한 언어로 얼마나 몸과 마음을 더럽혔습니까? 오늘 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참으로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이 시대에 활자화된 말씀이 없었다면 인류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할 때 성경에 대한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고 아울러 말씀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달고 오묘한 생명의 말씀이라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성경읽기를 싫어하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마치 방송 모니터라도 되는 듯 TV는 매일 일삼아 보면서 성경 한 장 읽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주부들이 그 얼마며, 신문은 그토록 즐겨 읽으면서도 말씀 한 구절을 묵상하지 않은 채 한 주간을 보내는 가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입니다. 우리가 매일 신문을 읽듯이, TV를 시청하듯이 성경을 보면 한 달에 성경 1독을 할 수 잇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한국교회 성도들을 보면, 예배는 비교적 열심인데 정작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힘이 없고 깊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권면 합니다. "제발, 기본적으로 성경 3독만이라도 하십시오." "제발, 하루에 한 구절씩은 암송해 보세요." 훈련받는 청년들에겐 이렇게 말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나이만큼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내 기도하는 그 시간(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사실 기도드리는 것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예배당 건물의 대형화에 비해 새벽기도회나 금요 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이제는 많은 교회들이 새벽예배 자체를 포기하고 금요 철야는 고사하고 금요기도회도 한 시간이 넘으면 길다 합니다. 

어는 주일 낮 예배에 오천 명 모인다고 자랑하는 교회가 새벽기도회나 금요기도회 때는 그 오십분의 일도 채 안 되는 것을 보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노래하면서도 세상 일락에 노예처럼 사로잡혀 영적으로 신음하고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찬송가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오래 전 제가 대구의 어는 교회 청년회 사역자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마침 연말이 되어 그 다음 해의 임원 선출을 위해 청년들이 모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서로 임원을 하지 않겠노라고 발뺌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다 못해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찬송을 서너 번 반복해서 부르게 했습니다.

이윽고 찬송이 끝난 후 임원으로 권유받았던 몇몇 청년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른 소감이 어떻습니까?" "네 은혜롭습니다. 언제 불러도 은혜가 됩니다." 그때 저는 그들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런 양심에 화인 맞은 인간들! 지금 당신들이 뭐라고 고백한지 아십니까? 내 평생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일 하는 것이 그렇게 소원이라면서 청년회 임원을 하지 않겠다니 주님을 우롱해도 유분수지 도대체 이것이 무슨 짓들이란 말입니까?" 혹시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진 않습니까? 주님의 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노래하고서도 항상 뒷전에서 맴돌고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 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주님의 두 가지 표정을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감격하시는 표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슬픔과 안타까움의 표정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어느 찬송인들 주님이 귀하게 여기지 않겠냐마는 특별히 이 찬송의 내용은 그 헌신의 깊이가 더 하고 사랑의 농도가 진해 이 곡을 부르는 제 자신의 가슴도 뜨겁거늘 하물며 그것을 듣는 주님의 마음이야 오죽 하시겠습니까? 이 가사야 말로 사도 바울이나 할 수 있었던 고백이요, 주를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린 베드로나 할 수 있었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한국 성도들은 이 찬송을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 한국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 베스트 10곡을 뽑으라면 이 찬송은 언제나 그 순위에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찬송은 찬송하는 그 순간만큼은 한국 성도들의 신앙심을 사도 바울의 수준으로 끌어 올린 셈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기뻐하시다가 이내 슬퍼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냉용과는 반대로 살고 있는 우리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글, 김정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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