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성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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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성도의 기도

김진호 0 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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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돕는 '보혜사'이시다. 하나님의 사역을 도울뿐만아니라, 성도의 모든 사역도 도우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로마서8장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고 했다. 성령께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신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허락된 특별한 축복이자 은총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능숙하게 잘 하려고 하기 보다 기도의 무릎을 꿇는 그 자체가 더욱 하나님 보시기에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가 마땅히 빌바를(기도할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성령께서는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은 성도의 기도를 도우시는 기도의 동력자가 되시는 것이다. 


성도가 아무리 성숙한 신앙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그가 하는 기도가 때로는 잘못 되어 있는 기도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경우이다. 이러한 성도의 약점을 성령께서는 도우시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도는 기도의 성장은 물론, 신앙의 성숙까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에베소서5장18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가르침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성령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영이시기에 성도가 성령 충만함을 받는 다는 의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누가복음4장을 보라,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로 기록이 된다.


그렇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지혜가 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열심이나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만이 성령에게 이끌리며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으면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태어난 '세례요한'이 성령에게 이끌리는 사역을 했고(눅1:15), 그의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하여 예언을 했으며(눅1:67),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은 받은 '제자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 따라 복음을 전했으며(행2:4),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행7:55), '바나바'가 성령이 충만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 한 것이었다(행11:24).


<고린도전서2장10절>에서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라고 했다. 또 <로마서8장27절>에서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라고 했다. 사람의 사정은 사람이 알 듯, 영의 사정도 영이 아는 법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해야 한다는 뜻은 성도는 누구나 성령충만해야 함을 요구하는 말씀인 것이다. 성령충만한 성도가 영이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도 성령이시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벧후1:21). 그래서 그 성경을 제대로 이해 하는 원리도 오직 성령충만 만이 정답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혹은 학식이 높은 사람이 성경을 재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충만함을 입은 사람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해내는 것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르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살펴보는 일에 있어서도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는 기도가 우선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6장18절>은 교훈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도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는 물론, 성령이 그 성도 안에 내주하는 자가 성도이다. 그리고 그 내주하시는 성령은 성도를 이끄는 분으로서 그 성도를 이끌기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중생한 성도라 해도 성령 충만해지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흙 덩어리요, 무지몽매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약한 성도를 위하여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를 하시는 것이다. 성도를 위한 중보의 기도자, 그분이 바로 '성령'이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제물로서의 중보자였다면, 성령은 성도의 기도하는 삶을 도우시는 중보자로서 성도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 할 때에 성령의 중보기도도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기도하는 주체는 분명 성도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성령께서 성도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돕는 이유는 그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기도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돕는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교훈한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이 돕는 기도를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령충만함을 입으면 된다. 그 성령충만함을 입는 비결은 다름 아닌, 먼저 성도가 성령충만을 위한 소원을 품어야 하며, 그 품은 소원이 입술의 고백으로까지 나오는 기도이면 되는 것이다. 하늘(천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거기엔 이 땅에서 성령충만했던 자들만이 영원한 기업을 누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성도의 신앙역사는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그 여러가지 역사는 오직 한 성령이 하시는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린도전서12장>을 보면 성령이 행하시는 사역들을 나열한 것을 볼 수 있다. 성도의 사역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임을 알게 한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들 통역',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고 했다. 


그렇다. 성령 역사는 성도의 개개인의 기도에 따라 성령이 친히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 성령을 성령이 아닌 사람에게(세간의 유명하다는 은사자들 포함) 받으려는 어리석은 발상은 금해야 한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성령이 친히 하시는 역사인데,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성도와 성령님 만이 독대하는 것이다. 욥기서에서 '엘리후'가 말한다.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욥32:8-9)" 


그렇다. 오직 성령님만이 성도 개개인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이다. 그 심령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성도의 기도에 전능자의 기운(성령)은 역사하시는 것이다. 유명한 목사가, 혹은 사려깊은 어느 철학자가 하나님의 기운, 즉 성령의 역사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도는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인해 거룩하게 된 성도라 한다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친히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 일체의 역사가 역동하는 곳이다. 사람의 지혜나 능력이 개입 되는 곳이 결코 아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가,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로마서11장36절>의 의미는 성삼위 일체로 일하시는 하나님 스스로의 지혜와 기운만이 세세 영원토록 운행하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전능자의 기운(성령)으로 충만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전능자 앞에 무릎을 꿇고 전능자의 기운을 간구하라! 전능자의 기운은 그런 자에게 나타나 그를 자신의 영광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하나님은 이렇게 스스로 모든 영광을 위하시는 분이시다는 사실은 성령과 함께 기도하는 성도만이 겸허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글, 김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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