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굴 - 이장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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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 굴 - 이장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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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 굴


사람은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부모형제가 있고 편안하게 눕고 자고 쉴 수 있는 집을 떠나서 또 다른 거처를 정하고 객지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생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객지 생활이 아니라 도망자의 삶, 쫓기는 자의 삶을 산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겠습니까? 다윗은 지금 어느 한 곳에서 정착하여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도망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도망자의 삶을 시작하는 초기입니다. 초기의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벌써부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합니다.


사울을 피하여 놉 땅으로 도망갔던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사울이 두려워 블레셋 땅 가드로 도망갑니다. 가드에서는 사울에게서 느꼈던 두려움 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을 경험하고 미치광이가 되어 간신히 빠져나와 아둘람 굴로 도망을 갑니다. 다윗의 도망은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에 상관없이 도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하여 도망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둘람은 ‘피난처’란 뜻으로 가드와 헤브론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가드 남동쪽으로 약 16km에 위치한 곳입니다. 아둘람은 당시 사울의 통치권이 잘 미치지 않은 지역으로 다윗이 도피하기에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다윗이 아둘람에 있는 ‘굴’로 도망했다는 것은 아버지의 집과 사울의 궁전을 떠난 도피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기브아 높은 곳에 밝고 위엄 있게 앉아있는데, 다윗은 컴컴하고 어두운 굴속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거처 없이 도망하며 굴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는데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둘람 굴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다윗을 절망 가운데 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둘람 굴에 외로이 있는 다윗을 돌보시며 다윗과 함께 하십니다. 다윗의 형제들과 부모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이 유다 산지에 다윗이 있는 아둘람 굴로 집결합니다. 가장 외롭고 힘들 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족을 보내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다윗에게로 모여들었는데 모두 400명가량” (삼상22:2)이 되었습니다. 홀로 아둘람 굴에 있던 다윗에게 함께 하는 사람들을 주셨고 다윗이 그 중에서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환난 당한 자’는 외적으로 가해지는 핍박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받고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어떤 환난을 당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사울의 학정으로 오랫동안 핍박에 시달렸던 백성들이거나 다윗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사울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로 사울 주변에 있는 정치인들일 수 있습니다. ‘빚진 자’는 돈을 빌려서 쓰고 이자를 갚지 못하는 자들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높은 이자의 돈을 빌렸는데 그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당 잡힌 재산을 몰수당하여 노예의 신세로 전략하여 채주에게서 도망친 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난한 자들입니다.


‘마음이 원통한 자’는 마음에 상처로 인하여 참기 힘들고 마음조차 추스르기 힘들어 누군가가 건드리기만 해도 분노가 폭발할 정도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고통스럽고 화가 쌓여진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들의 고통은 사울 왕국의 학정으로 인한 고통으로 당시 불의한 사울의 인본주의적 통치로 말미암아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임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면도 많이 있다고 보아집니다. 이들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모인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 자진해서 다윗에게 모인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로 이끌어 붙어 주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나왔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 죄인들,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 힘없는 사람들이 무수히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 고통으로 시달릴 때가 예수님께 나올 때이며,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글, 이장우 목사

성남열방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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