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성도의 기도만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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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성도의 기도만이 해결된다

김진호 0 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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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3장3절을 보면 민족의 회개를 촉구하다가 반민족주의자로 낙인찍혀 옥에 갇힌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성도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는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부르짖다 라는 뜻의 히브리 원어는 울부짖으며 호소한다는 뜻인데, 이는 성도가 가장 극한 문제나 상항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을 간곡히 찾으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은 분명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준수하지 않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당하는 중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계시하시기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이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시고 싶은 분이심을 시사하는 바인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목적은 백성들이 백성답게 살도록 하시려는 의미에서이다. 이럴때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 오기를 촉구 하시는데 그 방법이 바로 징계이며, 그 해결 방책은 성도의 부르짖는 기도인 것이다. 성도가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즉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만나 주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은총을 넉넉히 베풀어 주시는 분, 바로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이다.  


성도란, 영적인 것들이 잘 되어야만 범사가 잘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살아가다가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난제들이나 고통을 만나게 되는 이유는 사실상은 영적인 문제가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그렇게 성도는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만 행복한 영적인 사람들임에도 불구한데도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지혜와 힘을 의지 한다면 성도의 삶과 신앙에는 많은 난제들이 도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실수와 잘못을 거듭하는 존재들이다. 성도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하지만 성도의 특권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살아가다가 애매히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징벌을 당할 때에도 성도는 하나님을 피할 자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임을 아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거룩하여진 무리들이 성도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다. 결코 무엇을 먹고 마실 까에 연연해 살아가는 그런 세속적인 인간이 아닌 것이다. 성도는 결코 육적인 문제들(물질, 자녀, 진로, 질병) 앞에 벌벌 떨며 살아가는 자들이 분명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몰두하며 그 거룩한 목적을 달성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 영혼이 잘 되어 있다면 범사는 저절로 잘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성도는 또한 신령한 자들이다. 신령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늘 함께 하는 자들이기에 성도는 신령한 자들이다. 그런 성도가 문제를 만났을 때에 그 문제를 푸는 해결 방안은 무엇이겠는가 그 해결 방안 역시 신령한 것들로만 풀어야 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2장13절>에서 이렇게 교훈한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해야 한다...'라고, 그런데 그 신령한 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성도의 기도'인 것이다.  


그렇다. 성도들이 당하는 세상에서의 핍박, 교회의 타락, 자신의 연약함의 난제들에 휩싸여 실의와 모순과 갈등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해야 할 것은 오직 '부르짖는 기도' 뿐이다. 하나님을 찾는 일 외에는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이다. <예레미야29장11절에서13절>의 말씀이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성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다. 성도의 재앙은 하나님의 평안을 만날 기회인 것이다. 성도의 잠시 받는 환난은 곧 만날 장래의 멋진 소망들의 예시인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성도를 징계하시고 징벌할 때에도 그분의 생각은 '생명'이요 '평안'이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요한사도를 보라, 도미네시안 황제의 박해로 온 교회가 위기를 당하고 자신도 밧모섬에 극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했을 때, 하나님의 웅대한 승리의 계시를 받은 것,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아니었던가?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7절>에서 친히 말씀 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도는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성도들의 편만 되시는 분이시지 세속인들의 편이 결코 아닌 것이다. 성도의 필요를 위해서라면 그들을 성도들의 밥으로로 얼마든지 만드시는 분인 것이다.  


성도라는 특권 하나로 성도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있다. 비록 성도가 가끔은 잘못을 저지른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방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이유 때문이다. 아담이 죄를 범하자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숨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담을 구원 하셨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항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그분은 다시 성도를 만나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기를 즐기고 하나님의 명을 범하여 비록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하여도 하나님을 찾고 찾기만 한다면 만나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셨다. 그런 하나님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피로 인해 거룩하여 진 성도들이 당면한 문제를 외면 하시겠는가? 시대적인 난재를 만난 '코로나', 그 코로나가 아무리 극성을 부린다 하여도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면 하나님은 만나 주셔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그 질병을 물리쳐 주시는 것이다.  


지금은 기도 할 때다, 성도가 당한 위기와 고난의 난제는 분명히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가 도래 된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뜻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세속적인 물질 문명의 안락함 속에서 혹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지는 않았는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각성해 보고, 하나님을 다시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부르짖는 기도를 회복해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글, 김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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